“아직도 사진 촬영은 어색해요.”
최근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부활 정동하(33)는 인터뷰 후, 카메라가 돌아가는 사이사이 민망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 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는 무대 위에만 서면 180도 달라진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제대로 말이다. “미쳐보자!”를 외치는 건 단순히 객석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닌, 스스로에게 외치는 자연스러운 주문인 듯 싶다.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힌 다수의 무대는 물론, ‘불후의 명곡2’ 역대 최고점 보유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JK김동욱이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로 타이 기록을 세운 데 대해 “도전정신에 불을 지르셨죠”라며 싱긋 웃었다.
“사실 점수 자체가 큰 의미는 아니에요. 그날그날 변수가 있죠.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해요. 많은 변수들 중 하나는, 청중이 냉정한 평가를 하시느냐 여부죠.”
그는 11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2’ 100회 특집 들국화 편 라인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된 데 대해 정동하는 “어떻게 이렇게 섭외가 됐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분들이 출연하셨다. 그 사이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했다”면서도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고 말했다.
“산 넘어 산이었어요. 출연만으로도 기뻤지만 아무래도 승부를 가리는 무대니까.” 녹화 현장의 열기를 살짝 귀띔한 그의 발언에서 최소 ‘1승’은 챙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불후의 명곡2’가 재발견한 가수 문명진이 보여준 무대에 대해서도 “역시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불후의 명곡2’가 ‘전국노래자랑’처럼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 세대와 지나간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불후의 명곡’이죠. 가수 입장에서도 (음악이) 시대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불후의 명곡’은 시청률이 보증돼 있는 가수만이 아닌, 가능성 있는 가수들의 그 가능성을 보고 섭외하죠. 그 가수를 모르던 사람들도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묻혀질 뻔 했던 가수가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죠.”
정동하에게 역시 ‘불후의 명곡2’는 ‘부활 보컬’이라는 타이틀 없이도 실력 있는 가수로 조명 받는, 제 2의 도약의 기회였다. 부활의 음악을 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며 ‘가수’ 정동하로서의 토양을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부활 음악만 계속 하다 다른 선배님들의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고, 편곡하고 연출하면서, 뭐랄까요. 그 동안 (김)태원이형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면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제가 뭔가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불후의 명곡2’ 이후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는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매 순간, 매 무대 위에서 느낀 설렘과 떨림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나는 정동하에게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아보라는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다만, ‘불후의 명곡2’는 그에게 ‘자아 발견’의 소중한 기회를 줬다.
“오랜 역사를 가진 팀의 프론트에 서서 ‘안녕하세요 부활입니다’라고 하는, 그 말이 너무 힘들고 어색했어요. 그러면서 내 자아, 색깔 그런 건 사실 꿈도 못 꿨죠. 부활이라는 팀에 최대한 맞춰보려고 애를 쓰는 시간이었고. ‘불후의 명곡’을 만나면서 내 색을 조금씩 갖게 됐어요.”
2005년부터 부활 보컬로 전격 발탁됐으니, 팀에 합류한지도 벌써 8년째. 부활 정동하로서 보낸 시간의 ‘희노애락’을 기억나는 대로 들려 달라 하자 거침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부활에 들어가게 됐을 때가 ‘희(喜)’였죠. 그런데 첫 해 수입이 78만 원이었어요. 부활인데 일이 없다니. 거기서 ‘노(怒)’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부활의 팬이었고 또 사랑하는 그룹이니까 잘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애(愛)’, 사랑을 갖고 갔지만 너무 어두워서 ‘애(哀)’였고, 그러다 (김)태원이형이 예능 하시고 많은 일들을 하면서 지금은 즐겁게, ‘락(樂)’ 하고 있죠.”
그는 “수입이 없던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고 말했다.
혹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는지 묻자 “지나온 모든 과정이 쌓이고 쌓여 현재가 되는 것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나에게 불리한 무언가가 없었다면 그걸 넘어설 더 큰 힘을 기르지 못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재범 선배나 박완규형, 서문탁누나 등 노래 잘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비강 쪽 길이 되게 좁다는 점이에요. 노래를 하는 데 있어서 단점이 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폐가 발달하게 됐죠. 폐가 단련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유용한 점도 있었어요.”
그는 “살면서 생기는 단점이나 콤플렉스는 운동선수의 모래주머니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커버하고 뛰어넘기 위해 다른 것을 계발하게 된다. 단점이 있기에 또 장점이 생긴다고 본다. ‘흑역사’라 할 만한 게 언뜻 떠오르진 않지만 만약 있다 해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정동하는,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있는 듯 없는 듯’ 한 학생이었다. “공부를 하면 성적도 곧잘 나왔지만 고1 때부터 음악에 빠져 학업과 멀어졌다”고 솔직하게 말한 그는 자칭 “배트맨” 류(類)다.
“어떤 영화 속 악당의 대사 중 일부예요. ‘슈퍼맨은 그 자체가 원래 슈퍼맨인데, 배트맨은 원래는 그냥 사람이지만 배트맨 옷을 입으면 배트맨으로 변신한다’는 거죠. 저는 배트맨이에요.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서 무언가 하는 걸 상상하기 힘든 사람이었는데, 무대는 제게 그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장소였어요.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희한하게 그렇게 되요.”
술, 담배를 즐기지 않는 탓에 오직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일로써 스트레스를 푼다는 정동하에게 ‘노래를 잘 하는 법’에 대해 물었다. “본인은 노래를 잘 하지 못 한다”는 의례적인 답이 돌아온다. 영혼 없는 답변이라 타박하려 했으나 그의 말 속에는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담겨 있었다.
“정말 누가 들어도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완벽한 무대와, 가령 어느 노부부가 무대 위에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했을 때,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부르시는 노래 이렇게 두 가지 무대가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저는 진짜 좋은 노래는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가고 있던 시기, 임재범 선배님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르신 ‘여러분’ 무대를 보게 됐죠. 정말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본 뒤, 무대 위에서는 정말 거짓을 보여주지 말아야겠구나 나도 진짜 내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결심하게 됐죠. 앞으로 제가 보여드릴 무대들도 분명 진짜 무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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