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준비를 하고 온 게 아니라서…”
‘순풍산부인과’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 등 시트콤의 거장으로 불리며 우울함 속에서도 특유의 거친 익살을 보여주었던 김병욱 PD의 첫 인상은 생각 외로 온순했고 수줍음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하이킥’을 날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김 PD가 이번에는 tvN 새 시트콤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을 들고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너무 우울한 작품을 다룬다는 지적을 들어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전한 김 PD는 시트콤 고유의 엔터테인먼트 기능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를 강조했다.
“‘하이킥’ 시리즈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병에 걸렸다’였다. 이전 작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때를 생각해보니 제가 특별한 정치의식을 가진 것이 아닌데, 작품에서 대사를 이용해 사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이야기를 부질없었던 노력이다. 현재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고, 그런만큼 이번 ‘감자별’은 남녀노소 즐겁게 볼 수 있는 코미디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CJ E&M |
“시작 전 배우들에게 미리 부탁한 사안이 있었다. 실패할 확률이 90%이상 되지만 좋은 시트콤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8개월만 믿고 따라달라고. 시트콤은 캐릭터들이 만들어나가는 드라마다. 일반의 드라마는 어떤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신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반면 시트콤은 한 신 한 신이 중요하다.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도 많이 부족한데다 캐스팅도 역시 조금 약한 편이다. 이야기를 매일매일 만들어야 하니 웬만한 소재들은 다 다루었으며, 전에 했던 이야기와 겹치지 않도록 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화장실 이야기만 해도 전에 다루었던 사건과 다르더라도 ‘화장실’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이전에 나오지 않았느냐 지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트콤을 만드는 이유는 나 자신 스스로 시트콤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상파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던 김 PD는 ‘감자별’을 통해 처음으로 케이블 방송에 입성했다. 케이블은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상파 방송에 비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제약이 있다.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자리를 옮기게 심정을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그 배려가 무색하게 오히려 “매우 좋다”며 활짝 미소 지었다. 시청 층은 제한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감자별’을 챙겨보는 이들은 자신의 시트콤의 열혈 시청자들이 아니냐는 것.
“‘순풍 산부인과’ 때부터 대본이 거친 편이었다. 말이 거칠다. 사실 MBC에서 방송생활은 심의실과 싸움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심의에 걸렸고,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속어도 못 쓰더라. 더러운 이야기도 전혀 못쓰고. 그런데 케이블은 지상파에 비해서 무척 자유롭다. 지상파보다 더 거칠게 썼는데도 제제가 없더라. 세트를 고정으로 지어놓고 촬영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이는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하다. 세트가 있으면 하다못해 중간에 간장병 하나도 집어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더욱 ‘우리 집’ 같은 느낌으로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이킥 시리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배우 이순재가 ‘감자별’에 합류하면서 또 다시 김 PD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이순재의 경우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1’)과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하이킥2’)에서 큰 활약을 펼쳤었지만 이후 후속작인 ‘하이킥3’에 출연하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샀던 바 있다.
사진=CJ E&M |
이순재 만큼 ‘감자별’에서 눈길이 가는 출연진이 있다. Mnet 뮤직드라마 ‘몬스타’에서 민세이 역을 연기하며 풋풋함을 뽐냈던 하연수와 ‘감자별’을 통해 연기 신고식을 치르는 신예 서예지, 그리고 많은 누나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던 아역배우 여진구다.
“서예지도 그렇고 하연수도 그렇고 배우를 만났을 때 처음의 느낌이 좋았다. 오랜 연습을 통해 길러진 색깔이 아닌, 날 것의 느낌이 있었다. 기계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닌 이면의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미팅을 왔을 때 바로 대본 시놉을 주면서 그 자리에서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했다. 하연수 같은 경우는 특히 나와의 미팅 이후, 김은숙 작가와 미팅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김은숙 작가에게 뺏기기 전에 시놉을 주며 선택을 강요했다.(웃음) 서예지 역시 보자마자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곳 미팅을 보지 말고 우리가 캐릭터를 만들어 줄 테니 같이 하자’고 그 자리에서 붙잡았다.”
재미있는 점은 극중 하연수와 여진구가 같은 나이로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 90년생인 하연수의 나이는 24살, 97년생인 여진구의 나이는 17살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7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김 PD는 “나 역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둘이 투샷을 찍으니, 한 사람은 노안이고 또 하나는 동안이라서…오히려 하연수씨가 더 어려보이더라”고 폭로 아닌 폭로를 해 인터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실 여진구는 캐릭터가 뭔지도 모르고 캐스팅이 된 케이스다. 평소 여진구를 매우 좋게 본 터라 캐스팅을 한 뒤 그에 맞춰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러다보니 원래 설정보다도 더 나이가 많아졌다. 뒤늦게 캐릭터에 대해 통보해서 조금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감자별’은 2013년 어느날 지구로 날아온 의문의 행성 ‘감자별’ 때문에 벌어지는 노씨 일가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다룬다. 확실한 것을 다룬다고 생각이 드는 양자물리학도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들면 결국 불확실에 대한 내용을 다루듯, 우리가 보통 둥그런 원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실제 별 모양은 감자처럼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진 모양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행로 또한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인다. 이 같은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제목 ‘감자별’이란 ‘언제든지 갑자기 변할 수 있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진=CJ E&M |
분명 인터뷰 초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던 김 PD였지만 대화를 진행할수록 진하게 퍼져나가는 ‘김병욱표 염세주의 코미디’의 향기는 막을 수 없었다. 이에 김 PD는 “제 코미디는 뒤에 가면 허무함이 있고, 내가 진행하는 서사는 어딘가 약간 슬픈 점도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원래 사람의 생각과 세계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지 않느냐”고 당당함을 드르냈다.
“‘하이킥2’ 엔딩으로 많은 욕을 먹었지만, ‘해피엔딩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구나.’ ‘이런 엔딩도 있을 수 있구나.’ 등으로 다른 드라마와 차별화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미 다른 많은 드라마들이 각자의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다. 마음 한편에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인 드라마를 다루며 균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엔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나름의 균형이다. 그렇다고 내가 심오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 작품은 99.5%가 허접한 농담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작 0.5% 만이 염세적인 것을 담고 있다. 100% 아무 생각 없이 보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드라마를 통해 어떤 사상을 전파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혐의를 많이 받는데, 물론 그런 부분이 조금 있을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공중파를 벗어난 기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화장실 코미디, ‘똥’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신나게 떠들던 김 PD는 유난히 화장실에 집착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에 “지저분한 코미디이긴 한데 그런 코미디가 재미있지 않느냐”고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감자별’의 장면장면이 김 PD의 등 뒤로 스쳐가는 듯해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한편 ‘감자별’은 김병욱 PD와 ‘하이킥 시리즈’를 집필했던 이영철 작가, 감독과 수년간 호흡을 맞춘 제작진들이 다시 한 번 뭉친 작품이다. 여기에 김 PD의 작품에서 활약했던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