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해숙(58)은 자신이 “아직도 연기자로서 부족하다”고 했다. “겸손이 아니고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한다”는 베테랑 연기자. 입바른 소리가 아닌 듯하다. 그런 생각이 “배우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이제껏 그래 왔다.
“한 커트, 한 신이 나오더라도 내가 나온 장면은 책임을 져야죠. 같은 재료 가지고도 요리가 달라지듯 배우가 어떻게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기가, 또 연기자로서의 영역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영화 ‘도둑들’에서 맡았던 씹던껌으로 임달화씨와의 멜로도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답니다.”(웃음)
현재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그는 비중이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다. 하지만 똑같이 열과 성을 다한다. “당연하다”고 짚는 이 베테랑 배우는 “누구나처럼 똑같이 열심히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가진 것 없어도 깡 하나와 긍정의 힘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던 부산 사나이 강철(유아인)이 자신의 삶을 뒤흔들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깡철이’(감독 안권태)에서 그는 투톱 주인공으로 스크린 공략에 나섰다. 극 중 아들의 돌봄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 엄마 순이가 김해숙이 이번에 맡은 역이다.
“강철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 안에 엄마가 있잖아요? 병에 걸린 엄마 역할이지만 느낌이 정말 달랐어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누군가는 했던 역할인데 내가 하면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요.”
김해숙은 “치매 걸린 순이를 겉모습부터 불행해 보이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의지는 순이 캐릭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글라스에 화려한 모자를 쓴 엄마는 나이는 들었지만 예쁜 모습이다. 또 자신을 “김태희”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귀여운 중년이다.
“모자 같은 걸 쓰면 소녀 같지 않을까, 가장 예쁜 모습이지 않을까 했죠. 선글라스에, 구두도 굽 있는 것으로 신었고요. 옷도 한 4~5번 가공했어요.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한 거죠. 그게 모든 여자의 꿈이지 않을까요? 감독님이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서 좋았어요. 엄마의 모든 게 잘살아난 것 같아요. 호호호.”
김해숙은 자신을 김태희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 “절대 민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님이 예쁜 여자의 기준을 그렇게 잡았다”며 자신도 이름을 바꿔볼 생각이라는 농담도 덧붙인다.
그는 “예전에는 딸 가진 부모가 조금만 뭐해도 ‘우리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는 그 심정을 알게 됐어요. 아인이를 비롯해 드라마에 나와 아들로 삼았던 친구들이 인간적으로 괜찮아서 좋게 생각해요. 그 이상은 아니고요.”
김해숙은 ‘깡철이’를 마주하는 관객에게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에 눈물 한 바가지, 한 드럼통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무언가 꾸미고 설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영화의 주제는 그게 아니에요. 깡철이의 인생을 그리고 싶었던 거죠. 욕심내서 울리려고 하면 하는데 우리도, 감독님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해요. 누구나 피 끓는 청춘 한 번은 보내잖아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