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이런 아날로그적인 사랑은 추억을 일깨우고, 가슴을 저미게 해, 끝내 크리넥스 티슈를 찾게 한다.
22일 개봉한 ‘남자가 사랑할 때’(한동욱 감독) 역시 낯설지 않은 ‘황정민표 멜로’다. 가난한 남자의 따스한 사랑 얘기를 그렸다. 새로울 것 없는 사랑 얘기지만, 이 영화는 수컷의 절박한 사랑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너는 내 운명’ 이후 9년 만의 정통 멜로. 근 몇 년간 사나이 소굴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였는데, 왜 이 타이밍에 멜로일까.
“신파에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진심과 진정성 때문이죠. 사랑 연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가장 행복감을 줘요. 1차원적이고, 촌스럽고 올드하지만 그게 사랑인데 어쩌겠어요.”
교도소를 집처럼 들락거리는 뒷골목 일수꾼 태일(황정민). 대책없는 이 남자는 아직도 형 집에 얹혀 산다. 조카한테 삥 뜯기기도 일쑤다. 여자에게 다가갈 땐 바지부터 내리고 보는, 평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남자. 그런데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호정(한혜진)을 만나면서 사랑에 눈을 뜬다.
‘태일’은 전작 ‘신세계’ 속 ‘정청’과 닮아있다. 거친 삶을 살아왔고, 입에 욕을 달고 살고, 말 보다 주먹이 앞선다. 또, ‘너는 내 운명’의 우직한 ‘석중’도 떠오른다.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두 작품 속 캐릭터가 나란히 오버랩 되는 것.
“당연한 현상일 겁니다. 묻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요. 굳이 석중과 태일을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태일이 더 좋아요. 석중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강했다면, 태일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황정민의 설명처럼 ‘태일’은 군산 뒷골목 어디선가 진짜 살다갔을 것만 같다. 눈빛, 옷매무새, 말투, 껄렁껄렁한 걸음걸이까지 완벽한 ‘태일’이 됐던 황정민. 캐릭터와 한 몸이 되기 위해 화려한 문양의 셔츠, 일수꾼 가방, 헤어 스타일, 피부 상태까지 “깨알같이 준비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건달답게 보이려 노력했다”.
오랜만에 멜로 연기를 해 본 소감은 “신나고, 좋았고, 여전히 어렵다”였다. 남녀 간에 흐르는 공기, 잔잔한 떨림, 쾌감마저도 새로웠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사랑 연기더라”며 멋쩍게 웃는다.
상대 역 한혜진과의 호흡은 거슬림이 없다. “남자들과 눈 부라리고 싸우다 여배우와 연기하려니 처음엔 어색해.눈을 못 맞추겠더라”고 기억하며 웃는 그다.
그런데 당초 그녀가 결정됐을 땐 “너무 예뻐 어떡하지?” 했단다. 지방 수협 직원치곤 고와도 너무 고운 얼굴이 아닌가 했다.
“너무 맑은 친구더라고요. 방송에서 본 느낌과 달랐어요. 직접 만나니 수수하고 평범한 느낌이 강했죠. 멜로영화는 상대 배우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 하면 다른 사람도 안고 갈 수 있다 생각합니다.”
황정민은 호정(한혜진)의 버스 엔딩신을 이번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그가 등장하지 않는 신이다.
“태일이 떠난 7개월 후 호정이가 버스를 타잖아요. 스스로도 평상심을 찾은 줄 알았는데, 문득 아름다운 기억이 떠올라 모든 걸 내려놓고 꺼이꺼이 우는 여배우의 얼굴이 너무 좋았어요. 그 장면을 정말 사랑합니다.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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