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다양한 영화가 쏟아지는 극장가에서 영화만큼 많은 홍보사들이 자사만의 특색과 노하우를 살려 영화를 빛나게 만든다.
영화 ‘마이 라띠마’ ‘이머고’ ‘명왕성’ ‘나우유씨미 미술사기단’ ‘짓’ ‘뷰티풀 라이즈’ ‘캐치미’ ‘플랜맨’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살인자’ ‘신이 보낸 사람’ ‘쓰리데이즈 투킬’ ‘위크엔드 인 파리’ 등 장르불문 다양한 영화를 맡아 홍보해 온 영화홍보사 워너비펀은 홍보대행 작품의 편수를 최대한 적정선에 맞춰서 대행 진행해가며 한 작품, 한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워너비펀 중심에는 김영심 실장이 진두지휘하며 홍보의 노력을 가하고 있다. 김 실장은 영화투자사, 영화제작사, 온라인영화사이트, 홍보대행사를 거치며 영화산업 전반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영화 ‘자카르타’ ‘오아시스’ ‘B형 남자친구’ ‘아랑’ ‘이웃사람’ 등 다수의 작품에 대해 관객에 소개해 온 그녀는 현재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어느 누구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홍보 일을 즐기고 있었다.
완벽한 팀워크로 승부한다…워너비펀
Q. 워너비펀, 자사 소개와 사명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소개 부탁한다.
A. 워너비펀은 실장과 팀장 각 1명, 대리2명과 사원 2명 총 6명으로 이루어져있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不如樂之者니라” 공자의 말에 의하면,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어린직원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업무량이 많다보니 직원 간에 또는 파트너회사 간에 배려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아지는 등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갈수록 영화마케팅을 기피하는 현상도 보인다. 영화마케팅하면서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나 동료 선후배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배려하는 모습을 가지면 좀 더 업무에서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즐겁게 일하자는 단순명료한 명제를 실천하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기 위해 사명으로 정했다.
Q. 홍보마케팅 파트에서 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주 업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A. AD관련 선재물 기획 및 관리, PR관련 보도자료 작성 및 언론매체 대응, 배우인터뷰 진행 및 언론시사회, 제작보고회 등의 행사진행, 프로모션 섭외 및 이벤트 진행 등이 기본적인 업무다. 또 “어? 이런 일도 우리가 해?”라고 의아하게 여겨지는 무수한 잡일들도 있다.(웃음)
Q. 다양한 영화의 홍보를 맡고 있는데, 영화 홍보를 하다보면 홍보의 기준점이나 흥행감(感)을 잡는 능력이 뛰어나 질 것 같다.
A. 물론 “이 영화는 대박감이다!”라고 딱 눈에 들어오는 영화도 있고, “이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난감해서 거절했다가 다시 맡는 작품들도 있다. 영화마케팅에는 정답은 없다. 그래서 어떤 기준도 없다. 모든 영화가 케이스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진다.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항상 새롭게 도전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마케팅이 재미있다.
Q. 홍보일을 소화하면서 힘들었던 때와 반대로 보람될 때는 언제일까.
A. 가장 어려운 점은 노력한 만큼의 성과(흥행)가 없을 때, 반면 홍보마케팅하기 어려운 조건의 영화가 기대이상으로 흥행했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다.
Q. 보람도 느끼고 홍보를 한 작품 중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이 있는가.
A. 유지태 감독님의 ‘마이 라띠마’다. 홍보마케팅 예산이 없어 감독님과 배우들,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마케팅 스태프들이 품앗이 하듯이 일을 했었기에 더 애착이 간다.
Q. 반대로 아쉬운 작품도 있는지.
A. ‘플랜맨’이다. 영화 자체가 너무 좋았는데, 목표치에 한참 낮은 관객동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저러해서 흥행 못했다는 진단에 수긍할 수 없어서 한 달 넘게 왜 흥행을 못했는지, 어떤 방법을 동원했어야 흥행했을지 고민에 고민을 할 만큼 개인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이 있었다.
철없는 영화인, 김영심 실장
Q. 영화 일을 시작하고 지금의 워너비펀에 있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A.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제작사에 있던 친구소개로 영화 일을 하게 됐다. 그 후 홍보대행사를 거쳐서 한국영화제작사에서 영화기획과 마케팅을 함께 맡아 왔었다. 투자배급사인 대기업의 역할이 커지면서 한국영화 제작사들이 차츰 피디 혹은 감독 중심의 소규모 프로덕션으로 변화됐고, 제작사의 기획실이 유명무실해지면서 홍보대행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회사 대표님의 개인적인 이유로 휴업을 하게 되면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과 힘을 합쳐서 회사를 차린 것이 지금의 워너비펀이다.
Q. 처음부터 홍보파트(영화일)의 일에 도전하겠다고 꿈꾸고 일을 시작하게 된 건가.
A. 처음에는 홍보만 하겠다고 분야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영화기획에 초점이 더 있었다. 지금 홍보대행사에서 일하지만, 영화기획과 관련된 관심의 끈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자신이 기획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꿈인 것처럼, 언젠가는 내가 기획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있는 꿈이다.
Q. 영화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A. 개인적으로는 철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것은 아직까지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말랑말랑하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시멘트처럼 고정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기성세대’가 아닌 아직 꿈을 꾸고 변화를 도모하는 청년의 마인드로 산다는 것이 영화인의 모습 아닐까 싶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
A. 얼마 전에 온라인광고회사의 한 간부가 “영화의 열정과 애정으로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고 일하고 있다”는 말을 자랑이라고 전체 메일로 보낸 것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의 열정과 애정으로 직원들이 불합리한 환경에서 근무를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때가 물론 있었다. 내가 처음 영화 일을 시작하던 때였다. 제작사 대표님은 세일을 해서 발리 구두를 몇십만원에구입했다고 자랑하면서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월급은 30만원 주는 것조차 아까워했었다. 직원들은 김밥이나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었지만, 영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꾹 참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그런 악습에서 벗어나려 수많은 제작현장의 스태프들이 노력을 해오고 있고 일부 성취를 이뤄냈으며, 지금도 불합리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악습을 자랑이라고 공식 문서로 떠벌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사람들이
최준용 기자, 손진아 기자, 여수정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