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소셜네트워크에 빠져 있는 승호(이다윗)는 손에 항상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사령 카페' 방장인 승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닉네임 여우비(손수현)에 빠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비는 카페를 비하하는 글을 남기고 채팅방을 나간다. 채팅으로 자신을 구해달라는 말을 남긴 여우비의 말을 그대로 믿은 승호는 다른 온라인 친구 b-gen(박정민) 함께 살인까지 감행하려 계획을 짠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고등학생을 따라가는 영화는 무섭다. 비극적인 사건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학생들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부 청소년들의 상황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섬뜩하다.
다른 학급 동기들이 무엇을 해도 전혀 관심이 없는 승호. 힘이 센 이들에게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는 b-gen은 그 참았던 울분을 다른 이에게 푼다. 영화는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두 고등학생의 철부지 같은 행동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판타지라고 생각하면 좋겠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싸늘하다.
한지승 감독의 한국판 좀비 로맨스 '너를 봤어'도 독특하다. 유치할 지도 모를 좀비와 일반인의 사랑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상상의 미래 속, 인간과 좀비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배경이다. 좀비들은 치료를 받으면서 일반인들과 함께한다. 좀비는 노동자 계급이 되고, 인간은 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일한다. 공장 매니저 여울(박기웅)과 한 여자 좀비(남규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여울은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과거를 깨달아간다.
남녀 주인공의 감정적 교류가 어색하지 않다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한 감독의 말처럼 두 사람의 로맨스는 화학작용을 제대로 해 두 사람의 감정에 몰입되어 가게 한다. 지루하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노동자와 계급자의 상황과 대사를 뮤지컬처럼 전달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마지막 작품은 8살 꼬마 수민(김수안)이 동생과 단둘이 떠난 소풍지에서 보게 되는 판타지를 그린 김태용 감독의 '피크닉'. 김 감독의 상상과 현실의 조화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자폐 증세를 보이는 동생을 돌보기 힘든 소녀는 엄마 몰래 한 사찰에 동생을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후회와 미안함을 느끼는데 그 상황이 영화의 핵심이다. 3D 효과를 내기 위한 장치들이 이 과정에 담겨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후반을 집중력 있게 보게 하는 이유는 아역 배우 김수완의 연기 덕이다. 결손 가정의 수민은 동생까지 아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표현한다. '쌍엄지'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영화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해 이해 안 가는 부분도 꽤 있지만, 수민의 연기가 모든 걸 수긍하게 한다. 만화 보는 걸 좋아하는 수민이니 모든 게 가능한 일이다.
오는 15일 정식 개봉하기도 하는 '신촌좀비만화'는 상처의 치유와 소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물론 류 감독의 '유령'은 제외다. 하지만 '유령' 같았던 두 고등학생이 누군가로부터 제대로 소통하고 치유를 받았다면 끔찍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또 다른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류 감독의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영상을 위한 3D가 아닌 세 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상황들을 담은 입체 영상이 새롭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3D 옴니버스를 개막작으로 선정해 새로움에 도전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날부터 10일간 영화제를 진행한다. 세계 44개국 181편(장편 142편·단편 39편)을 상영한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의미로 개막식 레드카펫과 야외 행사 등을 전면 취소, 영화 상영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류 감독은 1일 오후 전북 전주 완산 전주객사 메가박스에서 열린 개막작 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 같은 충격적인 일이 발생해 애도의 분위기"이라며 "침통하고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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