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가요계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반짝 스타로 사라진 가수들.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돌연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라진 것들의 그리움에 대하여… <편집자 주>
[MBN스타 박정선 기자]
지난해까지 크고 작은 앨범을 발매했고, 드라나 OST까지 참여했다. 불과 몇 주 전에는 국내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그는 희미하다. 1990년대 후반, 감미로운 목소리로 발라드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더 포지션(임재욱)의 이야기다.
더 포지션은 데뷔부터 화려했다. 당시 신인으로서는 제법 많은 량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몇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섰다. 결국 그는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히트곡을 남기고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 데뷔부터 ‘대박’치고 ‘아이 러브 유’로 정점 찍다
1996년 ‘후회 없는 사랑’으로 데뷔한 더 포지션은 하루에 3만 장이라는 앨범 판매고를 자랑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신인으로서는 꽤 선방한 셈이다. 당시 임재욱은 달콤한 목소리로 여성 팬들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인기는 신승훈, 김건모, 솔리드 등이 나오면서 금세 식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3만 장씩 팔리던 앨범이 단 한 장도 나가지 않았다고. 팀의 존폐 여부를 두고 소속사는 회의에 돌입했지만 데뷔 시절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렸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대학로 길거리에 있던 리어카 아시죠? 거기서 저희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실 소속사의 힘도 있었죠.(웃음) 룰라와 경쟁해 1위에 오르기도 했고요.”
2집 ‘와인 앤 티어스’(Wine And Tears)는 타이틀곡 ‘썸머타임’에 ‘리멤버’ ‘원 모어 타임’까지 연속 히트를 쳤다. 그는 여름 노래인 ‘썸머타임’ 덕에 안 가본 해수욕장이 없을 정도라며 웃었다. 하지만 1998년 발매한 ‘필 소 굿’(Feel So Good)은 총 9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냈고, 또 다시 위기에 빠졌다. 결국 3집의 부진으로 한 팀이었던 안정훈과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그는 더 포지션으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렇게 낸 4집 ‘블루 데이’(Blue Day)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여세를 몰아 일본의 노래를 스페셜 앨범 형식으로 발매하게 된다.(당시 일본 노래를 카피하는 것이 추세였다) 그 곡이 바로 더 포지션의 최고 히트곡 ‘아이 러브 유’(I Love You)였다.
“‘아이 러브 유’는 그야 말로 대박이었죠. 지금까지도 그 노래를 사람들이 기억해주시는 걸 봐서는 정말 대단하긴 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5집 ‘마지막 약속’은 이전 만큼의 반응은 없었어요. 그렇게 앨범을 내는 족족 하락세였고, 2005년 리메이크 앨범 ‘르네상스’를 끝으로 국내 활동을 접게 됐죠.”
◇ “도망치듯 떠난 일본에서 내 현재 위치 깨달았다”
임재욱은 소속사와의 문제로 인해 도망치듯 일본 진출을 감행했다. 일본의 작은 기획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는 ‘한류 가수’가 아닌 일본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신인 가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처음 3년은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고 한글로 가사를 적어놓고 외우는 식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호텔에서 디너쇼를 한 셈이죠. 지인들만 모아놓고 공연을 하다가 재미있어서 매년 하게 된 거예요. 체계가 없는 작은 기획사였기 때문에 그냥 공연이 있으면 하는 식이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공연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관객 쪽으로 마이크를 넘긴 적도 있었어요. 뒷이야기는 안 해도 대충 아시겠죠?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 심정은 정말 딱 ‘미치겠다’였어요.”
임재욱은 당초 3년 계약으로 일본행을 선택했고, 한국과 다른 문화에 적응하느라 그 시간을 모두 써버렸다. 하지만 그는 3년 계약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일본에 머물렀다. “이왕 온 거 끝까지 한 번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힘든 생활을 버티고, 또 버텨 6년 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일본에서는 정말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기획사의 힘이 있어서 저를 보호해주는 게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덕분에 대중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았죠.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된 거죠. 예전에는 꾸준히 사랑을 받았는데 일본에서 고생을 해보니까 팬들 한명 한명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국내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잠깐 귀국해 앨범을 발매하고 간간이 한국 드라마 OST에 참여하면서 국내 시장과의 끈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국내 컴백을 결정한 건 한류 열풍이 불면서였다.
“한류가수들이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가면 주변인의 입장으로 외롭고 아쉬웠어요. 불안감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국내 팬들이 내 목소리를 잊을까봐요. 새 소속사랑 계약을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도 일본에서 기다리는 것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차근차근 다가갈 생각이에요.”
◇ “포지션의 색깔로 다시 대중들의 가슴 울리겠다”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발매한 미니앨범 ‘봄에게 바라는 것’이다. 큰 이슈를 끌지는 못했지만 임재욱은 이 곡을 발판 삼아 국내 활동에 기지개를 켰다. 특히 그는 앨범보다 공연을 통해 팬들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것을 중시 여겼다.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서니 힘들긴 하더라고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났어요. 그래도 팬들이 아직 제 목소리를 잊지 않으신 것 같고 호응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사실 지난해에 곡을 만들면서 저를 버렸어요. 예전의 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포지션의 느낌이 묻어 있어야 날 기억할 거란 생각을 못한 거죠.”
그래서 임재욱은 더 포지션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음악을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을 모아 함께 포지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후배 양성에 나섰다. 그보다 먼저 그는 자신을 다시 알리기가 급선무라고 했다.
“제2의 포지션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렇게 되려면 일단 제가 먼저 올라가야겠죠. 더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아야 후배들을 키우는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가 힘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더 포지션 임재욱은 가을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전국투어 콘서트를 계획 중에 있다. 과거 여성 팬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던 더 포지션이 후배 양성이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팬들의 마음을 흔들 준비를 마친 것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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