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도윤은 아직 누구나 알 만한 ‘대중스타’는 아니다. 어느새 12년째 연기와 함께 해 온, 소위 ‘잔뼈 굵은’ 배우지만 TV 시청자 앞에 나서는 건 이제 비로소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다. 황신혜, 김희선 등으로 대변되는 ‘컴퓨터 미녀상’은 아니지만 한 번 보면 왠지 다시 보고 싶은, 그 순한 미소와 참한 이미지가 떠오르다가도 막상 TV 속 ‘임도윤 아닌’ 임도윤을 보게 되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아, 천의 얼굴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임도윤은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보리(오연서 분)의 친구 영숙 역을 통해 확실히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여린 체구가 믿기지 않는 다부진 발성을 타고 뿜어져 나오는 걸쭉한 사투리에, 예뻐 보이는 일 따위 포기한 듯 미세한 잔근육까지 활용하는 찰진 표정 연기. 여기에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흡사 ‘미저리’ 같이 저돌적인 면모를 오버스럽지 않게 그려내는 표현력까지. 일각에서 제기되는 ‘왔다 장보리’의 막장 스토리가 주는 피로감을 잊게 만드는 ‘왔다 장보리’ 속 청량제 같은 존재가 바로 그녀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셔서 (영숙이가) 뜻 깊은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배우로서의 욕심을 내자면 다양한 감정씬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지금은 영숙이 자체가 너무 고맙죠.”
뒤늦게 하는 얘기지만 당초 ‘장흥불독’ 영숙 캐릭터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명 ‘감초’ 캐릭터였던 것. 하지만 임도윤의 열연에 회를 거듭할수록 캐릭터의 존재감이 빛났고, 덕분에 예상보다 더 많이 시청자와 호흡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임도윤의 고마움은 남다르다. 그는 ‘왔다 장보리’ 백호민 감독, 김순옥 작가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그 인물의 성격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처음 영숙이를 만났을 때도, 꼭 재미있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죠. 자칫 오버가 될 수 있거든요. 영숙이가 코미디언은 아니잖아요. 그저 영숙이의 마음에 집중했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영숙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하고…”
극중 절친 사이로 등장한 오연서와의 호흡에 대해 임도윤은 “연서가 한 살 어린데, 친구하기로 하고 친해지고 나니 나중엔 감독님들이 질투하실 정도로 호흡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경상도 출신인데 전라도 사투리 쓰느라 너무 고생이 많았다” 덧붙이며 격려를 전했다.
김지훈과의 티격태격 러브신은 임도윤의 일방통행식 짝사랑이었지만, 보는 내내 웃음을 줬다. 임도윤은 “영숙의 상상 러브씬에서 (김)지훈오빠가 안아줬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너스레 떨며 “부족한 점을 이끌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오연서의 보리, 김지훈의 재화 캐릭터 역시 임도윤의 영숙과 함께일 때 더욱 빛났다. 상대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 이쯤 되면 진짜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다”던 임도윤은 고등학교 때 연극부를 들어가며 처음 연기에 입문했다. 그는 고3 때 출연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의 열연으로 2004년 동국청소년 연극제 최우수연기상, 동랑청소년 종합예술제 우수상을 휩쓸었다.
서울예전을 졸업한 뒤에는 극단에 소속돼 오직 대학로에서 살았다. 그야말로 연기로 점철된 20대. 그는 “늘 열심히 살았지만 연기를 즐길만한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방황의 시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하지만 임도윤에게 ‘외도’란 없다. 한 순간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늘 연기만 했어요. 초반 극단 소속 배우로서 경제적으로 힘들 땐 서빙 등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며 공연에 섰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결국 그만 두고 연기에만 집중했죠.”
그러한 노력 덕분일까. 임도윤은 어느새 ‘씬 스틸러’로 기억되고 있다. “배우로서 분량 욕심은 당연히 드는 생각이에요. 연기를 더 많이 하고 싶으니까요. 다양한 씬의 다양한 호흡,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으면서도 이렇게 적은 분량으로도 존재감을 줄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정말 땡큐죠. 이런 역할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천상 배우다. 목표는 “끝까지 (연기)하는 것”이라 다부지게 말했다. “흔히 말하는 톱스타가 되는 것? 그건 제 꿈이 아니에요. 류승룡, 황정민 선배님을 좋아하는데, 어떤 역할을 맡아도 다 소화하시는 게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여자 황정민’ ‘여자 류승룡’ 등의 호칭을 듣고 싶어요.”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