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1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창작오페라 ‘배비장전’ 공연이 열린다. ‘배비장전’은 제1회 대한민국 창작오페라 페스티벌 선정작으로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창작오페라 ‘배비장전’은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불리는 기존의 오페라와 다르다. 한국의 이야기를 우리말로 재구성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기존 오페라 무대의 묵작함을 유지하면서도 뮤지컬의 경쾌함과 연극의 전달력을 적절히 가미했다. 토속 민요의 구수함은 한국형 오페라의 백미다.
‘배비장전’은 판소리로 구전되던 ‘배비장 타령’이 소설화된 조선 후기의 작품(작자 미상)이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배비장과 애랑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비장을 골탕 먹이는 방자와 애랑의 모습을 통해 위선적인 사람을 풍자한다. 양반들의 위선과 인간 본연의 욕망을 징계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계층인 기생과 종들의 계책이 재치 있게 벌어진다.
국내 최고의 성악가와 더뮤즈오페라단이 힘을 합친 ‘배비장전’은 고전소설의 맥락을 지키면서 현 세태를 꼬집는다. 한국 사회를 강타한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비유적으로 비판한다.
한국식 ‘판소리 창극 오페라’인 만큼 ‘세계 초연’이다. K-오페라의 물결을 전 세계로 퍼뜨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김지철 연출가와 이정은 더뮤즈오페라단장. 매일경제 스타투데이가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창작 오페라로 왜 ‘배비장전’을 선택했나?
이정은 단장(이하 이) : 오페라는 어려운 장르라는 인식이 강하다. 모차르트, 푸치니 등의 오페라 작품은 외국 정서에 알맞다. 음악 자체도 외국 원어로 불러 어렵다. 한국 사람이 그걸 감상하긴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쉽고 즐거운 작품을 찾던 중 현실을 풍자할 수 있는 ‘배비장전’을 선택했다. 웃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다. 더뮤즈오페라단은 그간 초연 작품들을 많이 했다. ‘피노키오의 모험’ ‘마일즈와 삼총사’ ‘스타구출작전’ 등이다. 모두 한국말로 새로 각색했다. 학생들, 학부모들 모두 재밌어 하고, 뿌듯해하더라. 마찬가지로 ‘배비장전’도 그런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다.
김지철 연출(이하 김) : 창작오페라 페스티벌은 창작오페라의 활성화를 위해 열린 것이다. 무거운 주제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가 공연 취지와도 맞다. 결국 쉽고 재밌어야 발전할 수 있다. 누가 오페라를 보기 위해 공부를 하겠나? 결국 제작자의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 오페라 작품이 몇 없다.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게 우리 목표다.
↑ /사진 이정은 더뮤즈오페라단장 |
이 :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수입된 지 67년이 지났다. 그동안 오페라단이 굉장히 많이 생겨 8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창작 오페라가 대우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취지로 만든 축제가 ‘창작오페라 페스티벌’이다.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에서 공고를 냈고 1회에는 우리와 고려오페라단의 ‘손양원’, 김선국제오페라단의 ‘춘향전’, 조선오페라단의 ‘선비’가 선정됐다. 내년에 2회가 진행된다면 다시 오페라단 선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3회, 4회로 매년 페스티벌을 이어가는 게 목표다.
김 : ‘배비장전’은 동서양의 조합이 재밌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우리 음악, 즉 판소리와 민요를 하던 분들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서양식 오페라에 많이 편승했다. ‘배비장전’은 서양의 것을 우리가 품은 것이다. 새로운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식이 결집한 게 ‘창작오페라 페스티벌’이다. 우리 작품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공연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는 시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K-오페라’의 선두주자가 되는 게 꿈이다.
- 작품 구상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풍자극인 만큼 현 세태도 꼬집을 수 있을 것 같다.
김 : ‘배비장전’에는 원작보다 훨씬 직설적인 풍자가 섞여 있다. 유명인들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극 중 배비장도 제주에 가서 유혹의 함정에 빠지지 않나. 가사에 ‘손녀 같이 귀엽다고 추행하던 놈도 있던데’라며 모 정치인을 비유했다. ‘집적대다 저리 됐다’며 윤아무개를 지칭했다. 사실 몇몇 정치인을 더 넣었다가 뺐는데(웃음), 두 명만 넣었다.
이 : 2014년 여름부터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기존 작품들은 ‘어떠한 이미지’가 구성돼 있어 재창작이 비교적 쉽다. 하지만 ‘배비장전’은 완전 창작이다. 내용과 무대 의상, 장치 등을 조화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다. 연습을 거치며 수정을 반복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못해 조금 아쉽다. 페스티벌 참여를 지난해 8월 초쯤 확정지었다. 이후 11월 배우 오디션을 봤고, 주조연 14명을 캐스팅 했다. 전통 한복 의상도 제작했다. 양복을 입던 배우들이 품이 큰 한복을 입고 거동이 훨씬 편해졌다고 좋아하더라(웃음).
김 : 이 단장님께서 외국 유학을 다녀온 후 설 자리가 없었던 성악가들에게 큰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 전문 성악가들이 ‘배비장전’이라는 큰 틀 안에서, 오케스트라에 박자를 맞춰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기대해달라. 아, 빼놓은 부분이 있다. 배비장이 한양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장면에서는 ‘세월호 사고’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사가 뱃사공들에게 구명조끼는 있는지 정원은 초과되지 않았는지, 불법개조는 아닌지 노래로 표현했다. 만약 규정을 어겼다면 ‘세월없이 극형에 처하리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 /사진 특수효과로 꾸민 ‘배비장전’ 무대. 미완성본. 제주 풍경과 폭포수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질 예정이다. |
김 : 풍자극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중점을 뒀다. 무대 연출에도 오페라 전문 스태프 뿐만이 아니라 뮤지컬이나 콘서트 스태프도 참여했다. 익숙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영상도 현대적인 느낌이 풍기도록 사용할 예정이다. 조명·특수효과도 이용했다. 제주도의 폭포를 특수효과로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들과 만나기도 한다. 직접 대화를 주고 받는다. ‘배비장전’이라는 재밌는 이야기를 오페라 속에 넣어, 무거운 오페라를 유쾌하게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 오페라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전문 성악가들과 무용수들, 또 합창단이 하모니를 이룬다. 안무는 오페라 아리아에 알맞게 짰다. 제주 민요를 활용한 무용도 있다. 완전 새로운 작품이지만 제주도 전통 민요들은 그대로 살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랄까. 관객들이 쉽고 재밌게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 마지막으로, 어떻게 창작오페라 ‘배비장전’을 봐야할지 조언해달라.
김 : 문화·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장르를 불문하고 똑같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가요냐 팝이냐 성악이냐 차이다. 단지 이번 작품은 오케스트라 규모가 크고, 오페라 전문 배우들이 아리아를 부른다. 무용수도 등장해 안무를 소화한다. 뮤지컬이나 연극 요소도 더했다. 오페라가 종합예술로 재탄생한 셈이다. 고전을 다룬 만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즐기기 좋을 것이다. 기생 이야기, 목욕신에서는 30대 이상 어른들이 간질거리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배비장전 : 판소리는 본래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오는 17일 오후 3시, 오후 7시30분 2회. 18일 오후 5시 1회. 인터미션 포함 1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