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혁(31) MBN 아나운서는 지난 2012년 말 공채 9기로 입사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출신이다. 아마추어 배구 리그에 참가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취미로 클라이밍을 즐긴다.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건 아니다. 그의 인생은 등락이 심했다. 거친 파도 같다. 남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들다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김 아나운서는 세 번을 겪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수학·과학이 좋아서 이과로 진학했어요. 공대를 꿈꿨고, 집안에서도 그렇게 믿었고요. 그러다 갑자기! 고2 말에 공부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즐겁지 않았어요.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말이죠. 체육을 다시 해보자고 각오했죠. 1년 남짓한 시간에 체대 입시를 준비해서 성공했어요. 대학 생활도 체대교수를 꿈꾸며 1, 2학년을 잘 지냈죠. 이게 첫 번째 터닝포인트입니다.”
김 아나운서는 체육교육과에서 배구를 전공했다. 포지션은 주로 수비를 맡았다. 학년이 높아졌을 땐 간혹 라이트윙(공격수)도 봤다. 차츰 인생의 진로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환점은 이 때 찾아왔다. 어깨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다친 후 배구를 접었어요. 정말 좋아서 미칠 것 같이 운동 했었는데. 이상하게 후회는 없더라고요. 열정적으로 하다가 실패를 하면 자기 인생에 언젠가 밑거름이 된다잖아요.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미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맡은 일에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요.”
“우연히 파티플래너를 하는 과 선배를 만나게 됐어요. 그 형이 ‘너 말 좀 하는구나. 내가 파티를 열건데 마이크 좀 잡아라’고 제안한 거죠. 그 때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봤어요. 느낌이 아주 짜릿짜릿 했어요. 내 말에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모습이 좋아요. 마약 같은 중독이랄까? 하하. 대중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방송을 하고 싶은데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 개그맨은 안 될 것 같고, 배우라기엔 얼굴이 부족하고. 그러던 중 그 형이 아나운서 어울리겠다고 추천했어요. 한줄기 빛이 보이더군요. 세 번째 전환점이었어요.”
김 아나운서는 현재 MBN에서 ‘야(夜)한 스포츠’ ‘스포츠 8’ ‘현장출동’ 진행을 맡고 있다. 셋 중 둘이 스포츠 프로그램이다. 체육학과 출신인 덕분일까. 그는 “우선 동기 중 남자가 나뿐이라···”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은근히 곧 입사할 10기 후배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남성의 힘을 키울 남자후배가 절실”하단다.
“저와 코드가 잘 맞아 재밌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렇다면 방송도 더 윤택해질 것 같고요. 특히 형이 아닌 동생이라면 더 좋죠. 푸하하. 다른 곳엔 여권신장을 외치는데 우리 아나운서국은 남성들의 힘이 필요해요.”
모든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싹싹하고 센스 있는 친구라면 만점이죠. 저도 처음 회사에 들어와 생활을 해보니 업무에 대한 압박감 보다 주변사람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야 내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어요. 어쨌든 MBN에 입사할 정도라면 실력은 있는 친구들이니까 걱정은 없네요.”
MBN은 10기 공채 아나운서를 선발하기 위해 과정을 밟고 있다. 여기서 낙방하더라도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꿈을 잃지 않는 청춘들이 많을 것이다. 김 아나운서는 이들에게 “한 번 미쳐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을 좋아해요. 어떤 일을 하든 언젠가는 당신이 더 나은 방향, 더 올바른 쪽으로 가기 위해 흘러가는 인생을 살 거예요. 지금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다면 한번 미쳐봤으면 좋겠어요. 아나운서가 되든 안 되든 미쳐봐야 후회가 안 남아요. 저도 배구하면서 다쳤을 때 미친 듯이 했었기 때문에 가볍게 포기할 수 있었잖아요? 하나에 빠져서 미쳐보면 언젠가 분명히 바른 길로 가게 될 겁니다.”
이어 “나도 합격 통지를 받기 하루 전까지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아나운서와 백수는 아무것도 아닌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를 우러러 볼 필요도 없고, 아나운서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다”며 “물론 종이 한 장을 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목표도 밝혔다. 사뭇 진지했지만 “돈을 벌게 해주는 직업이어서 좋다”라는 가벼운 농담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힘이 됐다. 이내 다시 ‘진지 모드’로 목표를 말하는 모습이 사뭇 어른스럽다. 참, 분위기를 ‘쫀득쫀득’ 잘 갖고 논다.
“아나운서란 제가 꿈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그런 착각을 일으키는 환상적인 직업이에요. 제게 딱 맞는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일은 못 할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고 매일매일이 달라서 늘 새로워요. 같은 자리, 같은 곳에서 촬영을 해도 다른 말과 표정으로 다른 뉴스를 전달하니까요. 지루하지 않아요.”
일을 즐기니 선배들이 참 좋아할 것 같다. 이런 말을 건네자 “나는 아나운서 팀 내에서 핀잔 받는 존재다. 선배들이 나를 편하게 대해줘서 감사하다”면서도 “팀장님이 가장 어렵다. 이 말을 들으면 ‘야 네가 무슨. 너처럼 까불대는 녀석이 어디 있냐’고 할 것 같지만, 난 어렵다. 성격이 엄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김 아나운서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랑’이다. 그는 한 달여 전 이별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하필 담뱃값이 오를 때였다”고 서글퍼했다. 그는 언젠가 새 인연이 찾아올 것이라 믿고 있다. 이상형은 걸스데이 혜리와 배우 강소라다.
“이상형은 귀엽고 섹시한,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베이글녀’예요. 특히 혜리는 ‘진짜 사나이’에서 애교 부리는 게 완전 최고였죠. 방송에서 아나운서로서의 목표가 하나 더 생겼어요. 혜리랑 같이 방송 하는 거요! 강소라도 매력적이죠. ‘마마’ 시상식에서 입었던 3만9천 원짜리 드레스! 굉장히 예뻐요.”
그는 너무 흥분했는지 잠깐 생각을 가다듬는 듯 했다.
“또 개그코드가 잘 맞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제가 개그나 유머를 쳤을 때, 내 개그가 그 사람에게도 재밌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제게도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개그 코드가 잘 맞으면 얼굴이랑 몸매도 두 배, 세 배 더 예뻐 보이거든요. 하하.”
“SNS에 제 영상을 올리면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댓글을 많이 달아요. 어떤 영상은 1만6천 건 플레이 횟수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그럼 제 지인들은 다 본거죠. 하하. 평소 연락이 안 되던 사람들에게서 문자가 오기도 하고, 감사하죠. 너무 오래 연락이 안 닿던 사람들과 만나면 생사를 확인했다는 기쁨에 몸서리치기도 한다니까요?”
그러면서 오래 전 삼촌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뉴스에서 삼촌 이름을 말하기로 했다는 것. 김 아나운서는 “늦게 지켜서 미안해요. 이제야 말하네요 삼촌. ‘심언봉’”이라고 대뜸 삼촌의 이름을 말했다. “약속을 지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익살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쭉 유쾌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게 김 아나운서의 소망이다.
“MBN 아나운서 중 저는 말랑말랑 재밌는 스타일이에요. 저를 보는 시청자들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유쾌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바라보면 기분 좋은 사람이요.”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