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단상에 올랐다. 할리우드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51)다. 영화 ‘워터 디바이너’의 감독 겸 주연배우로 한국을 찾은 그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인사를 건넸다. 1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이날 처음 메가폰을 쥔 것에 대해 “연기를 해오면서 감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며 “어떤 작품을 선정할 때 스토리를 중요시한다. ‘워터 디바이너’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워터 디바이너’는 전쟁에서 사망한 아들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최근 국내 극장가를 강타한 ‘부성애 코드’에 부합한다. 러셀 크로우는 주인공 코너 역을 맡았다. 낯선 땅 터키로 향해 그가 겪는 이야기들이 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
33년 연기 경력의 러셀 크로우는 이번 작품을 위해 벤 스틸러 감독의 조언을 구했다. 이는 감독과 연기자로서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벤 스틸러는 ‘네가 주연이기도 하기 때문에 너의 연기에 신경을 써라’고 했다. 감독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게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하지만 나의 연기가 부족하면 큰일 아닌가. 실제로 내 연기는 빨리 촬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영화에는 두세개 국의 문화가 섞여있다. 그에 맞게 부성애를 표현하려고 했다”며 “세계적인 공감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러셀 크로우는 그동안 리들리 스콧, 마이클 만, 피터 위어, 론 하워드 등 수많은 거장 감독들과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쌓은 탄탄한 기초와 경험이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발전했다. ‘워터 디바이너’ 출연진들은 리더십 있는 러셀 크로우 감독을 호평했다. 감독으로서의 첫 발에 칭찬이 이어지는 이유는 ‘성실함’ 덕분이다.
그는 “젊을 땐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드니공원을 찾았다. 땅에 ‘좋은 배우가 되겠다’고 소원을 적곤 했다. 이른 새벽부터 이런 일을 하는 건 나뿐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절제와 노력이 내 성장의 기반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배우들이 하지 않는 걸 하려고도 노력했다. 지금까지 온 비결이다. 작품 전 수개월간 겪는 혼자만의 고뇌가 나의 모든 준비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러셀 크로우는 “갈리폴리 전쟁 당시 호주 청년들이 시체로 고국에 돌아왔다. 국민들의 상실감이 컸다고 한다. 이 사건은 아직도 호주 사람들의 가슴에 큰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런 배경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모국애로 표현했다”며 “나 또한 삶의 대부분을 호주에서 지낸 만큼 호주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 국내 개봉하는 ‘워터 디바이너’는 3~4년씩 비가 오지 않는 호주의 척박한 환경에서 생명과 같은 물
호주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영화에 관한 각종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호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