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계속 부를 의미가 사라졌다는 남자. 좋아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 품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 여자 때문에 노래를 시작했으니 그의 선택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결혼하는 그녀를 위해 웨딩케이크 집 앞에 놔두고 멀리서 눈물 흘리는 남자. 그 감성이 남자 관객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촌스럽고 뻔한 감정일지 모르지만 영화 ‘쎄시봉’은 첫사랑의 풋풋함이 가득하다.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동요하게 만드는 노래로도 관심을 사로잡는다. ‘담배가게 아가씨’,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조개 껍질 묶어’ 등의 노래가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로도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70년대 젊음의 거리 무교동을 주름잡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음악으로 교류했던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과 가상의 인물 오근태, 그리고 이들의 뮤즈 민자영의 이야기를 담았다. 과거 실제 벌어진 일들과 가상의 사건과 인물을 버무려 한편의 완성도 높은 로맨틱청춘 음악영화로 탄생시켰다.
진구와 장현성이 이장희 역, 강하늘이 윤형주 역, 조복래가 송창식 역, 정우와 김윤석이 오근태 역을 맡았다. 민자영 역할은 배우 한효주와 김희애가 각각 연기했다. 영화는 이장희를 연기한 장현성을 화자로 이들이 노래하게 된 과거의 일부터 함께 노래하지 못하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물들간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첫사랑 향기 가득한 로맨틱음악 영화의 주인공은 정우와 한효주다.
세시봉 트리오를 한눈에 사로잡은 뮤즈 민자영. 그를 사모하는 송창식, 윤형주는 딱지를 맞지만 오근태는 자영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해 연인이 된다. 연인이 되기 전부터 또 연인이 되고, 그리고 헤어질 때까지 한효주와 정우 두 사람의 ‘케미’는 폭발한다.
특히 정우는 순수한 매력남으로 또 한 번 여심을 사로잡는다. 이제 고아라와의 ‘케미’는 잊어도 될 만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바뀌지 않은 듯 바뀐 모습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연출자 김현석 감독의 장점은 후반부다. 최근 유행한 복고풍 흐름을 타고 이어지는 것 같던 영화는 근태가 쎄시봉 트리오를 탈퇴하고 이들을 떠난 이유가 밝혀지는 후반부, 지루하게 늘어지던 중반부를 잊게 만든다. 화들짝 놀라는 순간, 과거 이들의 이야기가 궤를 맞추기 시작한다. 근태가 전해준 웨딩케이크와 트윈 폴리오의 번안곡 ‘웨딩케이크’의 설정 복선도 좋다. 몇몇 영화적 장치들은 이 영화가 노래와 첫사랑의 감정만으로 승부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웨딩케이크’의 슬픈 가사에 이런 사연이 있을 법하다는 감독의 상상력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관객들은 언제 김윤석과 김희애가 나오는지도 궁금해 미칠지 모르겠다. 각각 40대 오근태-민자영을 연기하는 두 사람은 정우-한효주와 싱크로율은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전 사건이 두 사람을 완전히 바뀌게 해놓았으니, 많이 달라져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1시간 30분이 지나야 나오는데 그래도 꼭 필요한 인물로 역할을 충실히 한다. 작은 분량에도 출연한 이유
노래와 첫 사랑 소재가 전하는 흥미와 재미가 30대 이상의 관객에게 와 닿는다. 10대와 20대들이 좋아하는 정우, 강하늘 등도 포진해 있으니 관심을 받을 만하다. 122분. 15세 관람가. 2월5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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