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배우 이창욱입니다. 작년 KBS2 일일드라마 ‘뻐꾸기 둥지’에서 최상두 역을 맡았어요. 벌써 그게 작년이 됐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요? 학교 졸업도 하고(축하해주세요!), 연기도 공부하고요. 곧 일일드라마로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뻐꾸기 둥지’에서는 참 거친 모습만 보여드렸는데요, 사실 저 굉장히 부드러운 남자거든요. 그래서 최상두 역으로 칭찬을 받았을 때 더 뿌듯했던 것 같아요. 좀처럼 보지 못하셨을(?) 저의 부드러운 매력, 오늘 다 보여드릴게요.
◇ ‘뻐꾸기 둥지’, 제게는 초등학교 졸업과 같은 작품
가장 최근작이 ‘뻐꾸기 둥지’에요. 그 때 초등학교를 졸업한 기분이었어요. 저는 엑스트라부터 단역, 조연으로 계속 올라온 케이스에요. ‘뻐꾸기 둥지’가 TV드라마를 시작한 세 번째 작품이었는데요. 그동안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마치고 이런 기분이었는데 ‘뻐꾸기 둥지’가 끝나니 드디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 같더라고요.(웃음) 인지도도 조금 생기고 주변 평가도 좋고 하니 책임감이 늘어났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할 때 굉장히 설레잖아요. 실내화 가방도 사고, 새 필통도 사고 하면서 설?��그 기분이 지금의 기분과 똑같은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제가 맡은 최상두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35살이었어요. 제가 그래도 90%는 동안으로 봐주시는데 35살이라니.(웃음) 캐릭터가 남달랐던 게 정말 거칠고 막 자란 친구였어요. 막말로 하면 ‘생 양아치’였거든요. ‘나랑 어울릴까’ 걱정이 돼서 처음에는 수염도 길러보고 별 시도를 했죠. 그래도 제 안의 것들이 녹아나오긴 하더라고요. 전형적인 거친 캐릭터보다는 부드러움이 늘어나니 동정심을 유발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배운 것,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압축해서 보여줬던 것 같아요.
↑ 사진=김재현 기자 |
‘뻐꾸기 둥지’에서 최상두 역을 맨 처음 받았을 때 정말 거친 캐릭터여서 놀랐던 게 기억나요. ‘이게 왜 나한테 왔지’ 의아할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전략을 세워야 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최상두가 10년을 어떻게 방황했을까? 다리도 저는데 왜일까? 그 인고의 세월을 내가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엄청 했어요.
그 과정에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고, 최상두와 화영(이채영 분)의 과거 신을 좀 바꾸기로 했죠. 원래는 굉장히 양아치가 그냥 ‘같이 살자’는 느낌이었는데 완전 틀었어요. 정말 사랑하는 모습으로요. 그 과거 신이 인물의 동기가 된 것 같아요. 캐릭터가 많이 잡히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대사도 제가 많이 바꿨죠. 감독님께서도 그걸 용인해주셨고, 과거 신을 바꾼 것에 대해서도 작가님들께서 굉장히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었어요.
◇ 좋은 드라마? ‘왜’가 들어간 것…그걸 만드는 게 배우
어릴 때부터 연극 작품을 들어가게 되면 항상 감독님께서 ‘왜 이 인물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걸 ‘테이블 작업’이라고 하는데 배우가 연기를 하기 이전에 대본을 보고 역할의 전 상황을 조사하게 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이 대사를 왜 하고 있고, 왜 이 때 등장하는지를 파악하게 되죠. 즉,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를 먼저 분석을 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도 역할을 맡으면 정말 많은 고민을 하죠.
저는 좋은 드라마라는 것은 ‘왜’라는 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말이 되기 힘든 이야기들을 ‘말이 되게끔’ 만드는 게 바로 배우의 몫인 것 같아요. 일일드라마에는 ‘막장’이라는 요소를 다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많은 선배님들께서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중견배우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게 돼요. 그리고, 만화영화에서도 리얼리티가 있는데 ‘막장’이라고 리얼리티가 없을 리 있겠어요? 그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항상 해요.
↑ 사진=뻐꾸기둥지 방송 캡처 |
‘뻐꾸기 둥지’에서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하고 대사도 조금 고쳤다고 했잖아요. 사실 대본에 주어지는 것대로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정해진 것만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제작진과 배우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배우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전문성을 갖추고 이 방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봐요. 결국 감독님과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똑같아요. 말이 되는 연기를 하는 것 말이에요.
첫 드라마였던 MBC 일일드라마 ‘내 손을 잡아’에 출연했을 시절에 많은 선배님들이 챙겨주셨던 게 기억나요. 그 때 조언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배우의 첫째 덕목은 정신력 싸움이다’라는 거였어요. 정신력은 즉 자신감이에요. 학교에서는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죠. 현장에 나왔더니 그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하루는 제가 대본 리딩할 때 대사 한 줄 가지고 엄청 떨어서 정말 많이 혼났어요. 그 때 이한위 선배님께서 딱 한 마디 하셨죠. ‘딴 거 없다잉. 자신감이다잉.’(웃음) 그 말이 어찌나 힘이 되던지. 그래서 저도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내가 최고다’라는 자기최면을 하는 것 같아요. 평소 생활에서도 자신감 있고, 밝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요.
◇ ‘이거 아니면 안 돼’가 아니라 ‘이거여야만 해’
사실 부모님께서 가끔 ‘너 초등학교 때 신문에 난 학원 모집 광고 보고 보내달라고 했던 거 기억 안나?’라고 하세요. 물론 그 때는 ‘네가 무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내주시진 않으셨지만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꽤 주목받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커가면서 성향이 조금 달라져서 닫혀졌고요. 배우가 된 계기요? 결정적인 순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 때 일반 학원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공부하던 때였어요. 그 날도 학원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어떤 여학생이 화구통을 메고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문득 ‘저 친구는 미술을 하는 모양이고, 나랑 비슷한 또래인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들보다 빨리 찾아서 더 먼저 성공할 수 있겠구나.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서 시작했죠. ‘난 뭘 하고 싶지?’라는 질문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배우’라는 꿈을 찾았어요.
↑ 사진=김재현 기자 |
때마침 친구 따라서 영화 ‘취화선’ 촬영장에 엑스트라 알바를 하러 갔어요. 최민식 선배님께서 계셨는데 정말 걷는 것도 멋있더라고요. 마침 미술 하는 학생을 본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경험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합쳐져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여기까지 오기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제가 생각한 대로 된 것 같아요.
데뷔요? 21살 때 모델로 했어요. 그 때 키가 작아서 참가번호 1번이었어요.(웃음) 그래도 제가 2500명 중에서 3등이나 했다니까요.(웃음) 그 때 소속사와 연결이 되고 이 방면에 발을 들이게 된 거예요. 그 이후에 연기로 학교에 진학했고, 배우의 꿈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어요. ‘한 번 사는 거 평범하게는 살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죠.
오래 걸려도 딴 걸 해볼까 싶진 않았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니라 ‘이거여야 한다’였죠. ‘이거 아니면 안 돼’는 두려움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두려움은 없었어요. 사실 지금도 제가 배우를 하는 거에 놀랄 때가 있기도 해요.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에 ‘네 마음을 따르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 말이 정말 딱 맞았어요.
◇30대의 목표는 ‘좋은 배우’…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었던 때가 있었냐고요? 왜 없었겠어요.(웃음) 가장 피크였던 게 29살 때였다. 28살까지는 괜찮았어요. 처음 배우 할 때의 열정이 남아 있었고, 학교생활도 정말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고 다녔고, 연극, 공연, 뮤지컬까지 정말 고군분투했으니까요. 그런데 29살 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싶더라고요. 1년에 작품을 하나 밖에 못했어요. 그것도 단역이었고요. 유연석 선배가 학교 선배인데 잘 나가는 걸 보고 더욱 내 모습에 ‘왜 이럴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 정도 집에서 칩거를 했어요. 나름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는 정말 우울해서 잠도 못 자고, 정말 마음이 바닥 끝에 내려가 있을 때였죠. 한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우연히 집 앞 도서관에 갔어요. 그 때 법정스님의 책을 봤는데 ‘49재 지나면 내 책을 팔지 말라’는 말 때문에 기증된 책이어서 눈길이 갔어요.
↑ 사진=김재현 기자 |
무심코 한 장을 꺼내서 읽었는데 첫 장을 보고 영혼의 치유를 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증서라 대여도 안 되는 그 책을 읽으러 한 달 정도 도서관에 출퇴근하다시피 했어요.(웃음) 그 책을 읽고 딱 털어냈죠. 영혼이 치유되니 사람도 활기차지고 웃음도 되찾았어요. 그리고 지금의 소속사도 만나게 됐고요.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좋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어요.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걸어왔던 것 같아요. 사실 집에 ‘꿈 보드’라고 해서 꿈을 써놓는 보드판이 있어요. 20대 중반에 쓴 건데, 지금까지 그 보드판에 써놓은 모든 꿈들을 다 이뤘거든요. 그 보드판의 30대 꿈은 ‘좋은 배우’라고 써져있어요. 40대에는 ‘제작자’, 50대에는 ‘회장님’이라고 쓰여 있죠.(웃음) 웃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 있어요. 일단 3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으니 ‘좋은 배우’부터 이루는 게 제 목표에요.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