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성칠(박근형 분)은 장수마트를 지켜온 오랜 모범 직원이다. 그에겐 자부심은 넘쳐도 배려심은 없고 다정함 따윈 잊은 지 오래다. 그런 그의 앞집으로 이사 온 고운 외모의 금님(윤여정 분)은 언제나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우연한 계기로 저녁을 먹게 된 날부터 성칠의 마음이 떨리고 있다. 장수마트 사장 장수(조진웅 분)과 동네 사람들은 ‘성칠-금님 연애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온갖 데이트 노하우를 전수한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어느 날 성칠은 금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비밀을 알게 된다. / ‘장수상회’
[MBN스타 여수정 기자] “결말을 예고하는 복선이 매우 많았음에도 어쩜 그리 눈치 못 채게 연출하셨어요”라는 짓궂은 질문에 영화감독 강제규는 신사다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에서 “관객도 그렇게 느끼겠지요?”라는 무언의 질문이 전해지는 듯했다.
전작에 비해 흥행 부담 없이 매우 편안하게 촬영했다는 강제규 감독. 노년층의 로맨스로 젊은 관객까지 자극할 수 있기에 또한 평범한 이야기로 엄청난 감동을 선사하기에 겸손한 발언이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로 관객을 만났던 강제규 감독은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장수상회’로 스크린을 두드렸다. ‘장수상회’는 인생의 마지막,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순간에 불현 듯 찾아온 사랑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해가는 성칠과 금님, 그리고 이들의 연애를 곁에서 응원하는 동네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다뤘다. 감독 자체가 지니는 브랜드 파워도 엄청났지만 초호화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아왔다. 배우 박근형과 윤여정을 시작으로 조진웅, 한지민, 황우슬혜, 찬열, 문가영, 배호근 등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 사진=MBN스타 DB |
“영화 초반과 달리 후반에 갈수록 미스터리한 구조가 나타난다. 이런 반전을 관객들이 알까, 알게 된다면 어느 부분에서 느낄까가 매우 중요했다. 시나리오 과정에서도, 장면을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잘 설정해 배치한 것 같다. (웃음)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극중 김성칠과 임금님이라는 이름이 독특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이자 귀한 존재가 아니겠냐.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칠은 별 성에 일곱 칠, 즉 하늘에 빛나는 별 북두칠성이다. 임금님은 이름 그대로 귀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성칠과 금님은 각각 하늘과 땅에서 존귀한 인물인 셈이다.”
“‘장수상회’는 배우들의 연기에 치중하고 집중하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골격도 중요하지만 앞서 언급한 미스터리한 부분이 정밀하게 표현되어야만 한다. 자칫 무거워 질수도 있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조금 언급해줌으로서 밝고 따뜻한 이야기까지 전하게 된 것 같다.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기능과 역할이 크든 작든 중첩되지 않고 각각 살아있는 것 같다.”
분명 노년층의 로맨스가 주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전 세대 관객을 자극할 만하다.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금님을 위해 기꺼이 토끼귀 머리띠를 착용해 ‘귀요미 할배’로 변한 성칠, 연락에 웃고 우는 두 사람의 모습 등이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를 새삼 강조하고 있다. 노년층의 로맨스에 젊은 관객이 두근거리며 우리가 곧 미래의 성칠이자 금님이 되기도 한다.
“사랑 앞에서는 나이가 들었든 젊었든 똑같이 표현하더라. 물론 10대만이 느끼는 대사와 감정을 노년층, 즉 신중년이 똑같이 느낄 순 없다. 또한 이를 표현한다면 리얼리티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신중년층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점잖기보다는 고등학생들 같을 때도 있다. 정말 밝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더라. (웃음) 결국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며, 육체는 늙어가지만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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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과 한지민의 연기를 보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두 사람의 눈을 보면 반투명하고 마치 속이 보이는 것 같더라. (웃음) 영혼이 맑고 투명하다. 황우슬혜와 찬열은 극중 인물과 이미지가 100% 맞아떨어졌다. 우선 황우슬혜는 웃어야할 때 웃지 않고 울어야할 때 울지 않더라. (웃음) 반응 속도나 리액션이 독특해 재미있었다. 찬열은 정말 너무 밝더라. 키도 크고 요즘 애 답지 않게 순박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강제규 감독은 흥행 부담 없이 촬영에 임했고 지금도 흥행에 대한 욕심이 없이 매우 편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몇 만이 들었으면 좋겠다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감독으로서 흥행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게 촬영했다. 지금도 매우 편안하다. (웃음) 아예 흥행에 대한 생각과 예상 관객수 예측도 안하고 있다. 그저 ‘장수상회’가 젊은 세대든 나이든 세대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따뜻함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또한 다양한 세대를 겨냥한 한국영화가 많이 개봉됐으면 좋겠다. ‘장수상회’를 보고 공감했다고 전하는 관객이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노년층의 로맨스를 앞세워 마케팅을 했는데 궁극적으로는 가족 이야기이다. 잘 살펴보면 주인공들을 통해 각 시대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전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고, 그랬으면 좋겠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