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남우정 기자] 홍대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인디신이 성인이 됐다. 대형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TV나 라디오, 매체를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2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 문화가 됐다.
홍대 인디신의 시작은 1996년 홍대 클럽 드럭에서 진행됐던 너바나 커트코베인의 사망 1주기 추모공연을 기점으로 한다. 이를 시작으로 드럭에서 다양한 밴드들의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면서 홍대가 인디 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엔 기타리스트 원종우가 한국 최초로 독립 앨범을 발매했다. 개인이 작사, 작곡, 연주는 물론 레코딩과 믹싱까지 마쳤다. 과거 앨범을 내려면 모두 기획사를 음반사를 찾아다녔지만 원맨 밴드 배드 테이스트의 앨범은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작품이 됐다.
↑ 크라잉넛, 노브레인 |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주류에서는 H.O.T를 비롯한 아이돌 음악이 사랑을 받은 가운데 인디 신에서는 펑크나 얼터너티브 록들이 주를 이뤘다. 청년단체, 크래쉬 등이 공연을 열면서 인디신의 라이브 공연은 활발화 됐다. 특히 IMF로 경제 불황이 계속되던 시기 오히려 인디신은 활성화 됐고 그 중심에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있었다.
인디신에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존재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공연과 음반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던 밴드들이 TV로 나오는 계기가 됐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와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는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다. 노브레인의 ‘바다 사나이’는 인디밴드로는 처음으로 음악프로그램 차트에 진입했고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는 CF에 삽입되기도 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드럭을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클럽 블루데빌을 발판으로 삼았다. 이선규, 김진만이 만든 팀인 CCR에 김윤아, 구태훈이 차례로 합류했고 이들은 결성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영화 ‘꽃보다 남자’ 수록곡을 부르면서 바로 주류로 편입됐다.
이들의 활약으로 각종 방송사에서도 음악방송에서 인디 밴드들의 출연을 시도했다. 아예 하나의 코너로 만들어 인디밴드들을 출연시킨 움직임을 보였지만 2005년 MBC ‘음악캠프’에서 밴드 럭스와 합동 무대에 선 카우치의 성기노출 사고로 인해 인디신에 먹구름이 씌였다.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방송사들은 인디밴드를 무대에 세우는 것을 중단했다. 라이브클럽들은 카우치 사건으로 인해 오해를 안게 됐다.
듀오 십센치(10cm)도 인디 열풍에 한 획을 그었다. 어쿠스틱한 멜로디에 야릇한 가사, 십센치 덕분에 어쿠스틱 기타와 젬배까지 동이 났다. 이후에 발매된 음악들을 살펴보면 십센치를 보는 듯한 음악을 하는 팀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년이 지난 현재 인디 음악은 펑크와 하드록이 난무했던 과거에 비해 다양한 장르가 넘나들고 있다. 모던록에 어쿠스틱 밴드부터 ‘홍대여신’으로 불리는 여성 뮤지션도 많아졌고 페스티벌들이 많아지면서 록, 힙합, EDM 장르까지 쏟아지고 있다.
남우정 기자 ujungnam@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