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한새가 묵은지찜을 들어올려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사진=강영국 기자) |
조리는 꽤 간단해 보여도 정성이 들어간다. 적당량의 기름진 돼지고기에 묵은지를 둘둘 말거나 그 위에 얹혀놓고 가열하면 된다. 단, 불에 끓이고 뜸 들이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해야 한다. 센 불에 끓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MC한새(39·본명 윤성훈)의 음악이 그렇다. 듣기 편하다. 아무리 가사가 많은 랩이라도 또박또박 귀에 들어온다. 부드럽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노랫말 속 칼칼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뚝딱 쉽게 만들어지는 음악이 아니다.
↑ 보글보글 끓고 있는 묵은지등뼈찜(사진=강영국 기자) |
그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으나 그저 밝은 노래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그 입꼬리가 무겁다. 새콤한 묵은지는 역시 밥에 싸 먹고, 돼지고기(등뼈)는 뜯는 맛이 있어야 한다.
"'안녕들하십니까' '쥐를 잡자' 등 정권을 겨냥한 사회 비판적 노래 이후 진짜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 툭 하면 '19금'이 걸렸다. 노래에 '젠장'이란 단어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예전에 '제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Mnet '언프리티랩스타'에서는 그보다 거친 표현 더 많다."
'19금'이 걸리면 음원 사이트 '1분 미리듣기'가 불가하다. 한 곡만 걸려도 해당 앨범 자체는 매장 매대에 진열되지 못한다. 오로지 귀퉁이 진열장에 세워 꽂아 놓게만 되어 있다.
"주변에서 그러더라. 시쳇말로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고. 예정된 행사 섭외 요청도 다 취소되곤 했다. 설마 나 같은 래퍼에게조차 높으신 분들이 신경을 쓰겠나 싶으면서도 두려웠다. 당시 '듣는 이의 해석은 자유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는 해명은 솔직히 무서워서 둘러댄 말이었다."
자신의 주관을 펼치는 소신 뚜렷한 몇 안 되는 뮤지션임에도 MC한새 예명 앞에 붙는 오래된 수식어가 있다. 1995년 데뷔한 그는 '1세대 꽃미남 힙하퍼'로 불린다. 정작 당사자는 이 말을 싫어한다.
"전 소속사가 날 '꽃미남' 이미지로 만들었다. 언더그라운드 활동 시절, 데프콘 같은 거친 외모의 친구들과 무대 동기였으니 내 외모가 튀긴 튀었다. 그런데 요즘 잘 생기고 예쁜 아이돌 그룹 무척 많지 않나. 내가 그들 사이에 어떻게 끼겠는가.(웃음) 그렇다고 일부러 수염을 기르거나 문신을 하는 것도 웃기더라. 음악으로 표현하면 된다. '서정의 힘'을 믿는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의 외모가 아니어도, 힙합과 김치는 웬지 어울리지 않는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힙합신은 '미국 정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이 자랑이다. '한국적 힙합'이라 칭해지는 MC한새의 음악은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이단아 취급을 당하며 폄하되기 일쑤다.
"섭섭한 감정도 있었다. 정통 힙합신에서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미국 스타일을 쫓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너무 편협한 생각이다. 랩을 해야 힙합이고, 힙합하면 거친 랩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생소했던 힙합 장르를 우리나라에 알리는데 내가 견인차 역할을 한 점에 만족한다."
↑ 술잔을 기울이는 MC한새(사진=강영국 기자) |
"지금 우리나라 랩은 안들리게 하는게 대세인 것 같다. 다들 일부러 영어처럼 꼬아서 말한다. 난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걸 소위 '스웨그(swag)'라고 주장한다. 나처럼 랩을 또박또박하면 촌스럽다고 한다. 일단 모든 노래는 들려야 한다. 그 다음 자기 색깔을 찾아나가야 한다. 들리지도 않는데 무슨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기본이 중요하다."
MC한새는 요즘 돈벌이에 눈이 먼 교육계에도 쓴소리를 했다. 요즘 대학교와 실용음악학원 시장에서는 힙합과가 인기다. 한때 오디션 열풍이 일며 실용음악과가 우후죽순 생긴 뒤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계속 되고 있다.
"한 대학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은 적 있다. 래퍼를 최대한 초빙해 커리큘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밑질 게 없는 장사라는 식이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싶어 정중히 거절했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힙합을 배우고 싶은 입장에서 그 방법과 길을 못 찾고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수단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용한 상업적 변질이다. 대학이 진정성 있는 배움의 요람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MC한새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달달한 보쌈김치는 금세 질린다. 겉절이는 결코 묵은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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