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홍보마케팅회사 ‘영화인’ 대표, “16년 장수, 직원들의 힘이죠”
영화 ‘극비수사’, ‘애기 무당’ 역할로 깜짝 데뷔
“하지원 에너지 넘치고, 류승룡 아이디어 뱅크, 유해진 하트 뿅뿅 매력 최고…”
1978년 실제 있었던 부산 아동납치 사건을 소재로, 사주(四柱)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와 도사의 33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극비수사’의 언론배급시사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를 찾기 위해 엄마가 점집을 찾은 장면에서 꽤 많은 기자와 관계자들이 ‘큭큭’ 혹은 ‘풋’하고 웃었다. 긴장감 넘치고 진지해야 할 신에서 웃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애기무당’의 주인공이 ‘극비수사’ 홍보를 맡은 영화홍보마케팅 회사 ‘영화인’의 신유경(47) 대표였기 때문이다.
“제가 진짜 이렇게 인터뷰해도 되나요?”
햇볕 쨍쨍해진 최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영화홍보사 ‘영화인’ 사무실. 신 대표는 인터뷰 직전까지도 배우 신유경으로서의 인터뷰 요청을 낯설어했다. 얼떨결 데뷔이지만, 관계자들에게 인상 깊게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런가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왜 저보고 같이 하자고 했을까요? 제가 무당같이 생겼나 봐요. 하하하.”
처음 보는 이들에게 신 대표의 인상은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람 만나는 것과 이야기하는 것, 술 마시는 것 좋아하는 그냥 사람 좋은 영화인이다.
그 흔한 타로점 한 번 본 적 없는 신 대표. 심지어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처음에 곽경택 감독으로부터 “딱 맞는 캐릭터가 있다. 무당 역할 한 번 하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돼”라는 말로 발끈, 손사래 쳤다. 하지만 끈질긴 것 하면 또 알아주는 곽 감독은 신 대표를 결국 영화에 합류시켰다.
“사실 내키진 않았지만 내가 홍보하는 영화에 감독님이, 그것도 농을 건네지 않는 곽 감독님이 제의한 거니 의도가 있겠지 싶었어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버렸죠. 처음에는 마음이 조금 그랬는데 촬영하다 보니 재미있는 추억거리, 이야깃거리가 생겨 좋은 것 같아요.(웃음)”
단역이었지만 실제 사투리 교육도 받고 대본 연습도 했다. 곽 감독이 재미삼아 허투루 캐스팅한 게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감독이 원하는 톤과 준비한 톤이 달랐는데, 신 대표는 자기가 맞는 것 같다는 의견까지 냈다. 초보자라서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영화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투자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좋은 듯, 신 대표는 껄껄댔다.
“영화 홍보사 운영이 안 될 때, 이렇게 조연으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공을 돌렸다. “위기의 순간마다 각 팀의 헤드들이 중요한 역할로, 책임감 있게 꾸려갔어요. 근무조건이 열악하니 이직도 잦은데 한 사람이 나가면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우르르 그만둘 수 있거든요. 저야 마케팅이 조금 더 인기가 많았고 지금처럼 일이 많지도 않았던 예전의 10년을 지냈고, 또 상황 나쁘지 않게 5~6년을 즐겁게 일한 것 같은데 지금은 달라요. 요즘은 일이 너무 많아지고, 한 작품 회의 한 번만 해도 열댓 명이 모이니깐 거대해졌어요. 업무가 딱딱해진 면도 있어서 회식도 힘들죠. 예전에는 일이 안 풀리면 그냥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면 됐는데 사실 요즘은 그것마저도 쉽지 않아요.”
그래도 영화가 좋아, 영화 홍보 마케터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신 대표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돈 잘 벌고 평범한 회사원을 꿈꾼다면 권하고 싶진 않은 직업군”이다. 하지만 “영화에 애정을 쏟고 영화 일부분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면 언제든 환영이고, 이 일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허드렛일부터다. 보통 3년 차가 돼야 그나마 마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3년 차가 하는 일을 보고 ‘저것밖에 안 되는 거야?’라고 나가는 이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신 대표는 “마케터 일을 하며 사람들이 다들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한 영화들이 터졌을 때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미녀 삼총사’, ‘에린 브로코비치’, ‘버티칼 리미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잘 될 거라 예측하지 않았지만 한국팬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들이 많았다”고 떠올리고는 행복해했다.
홍보한 영화만 100여 편. 그 중 흥행 안 된 영화도 많다. 특히 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 주연의 ‘청연’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친일 논란’, 실상은 그게 아니었는데 인터넷에 일파만파 잘못된 정보들에 속수무책 당했다. 신 대표에게는 몇십 년이 더 지나도 기억에 남을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홍보사가 인터뷰와 제작발표회, 언론시사회, 쇼케이스, 관객과의 대화 등을 챙기니 배우들과도 친분이 생겼을 법 하다. 또 반대로 영화산업 피라미드의 밑바닥 계층이라는 생각을 하는 일부 배우나 언론의 갑질도 있지는 않았을까.
“언론에 대해서는 뭐라 말해야 할까요?(웃음) 배우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이상한 건지 소속사가 이상한 건지 헷갈리긴 해요. 현장에서 만났을 때 판단할 수 있는 거죠. 그래도 하지원씨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배우가 에너지 넘치면 현장이 확 살아나는 느낌 있잖아요? 마케팅할 때도 그래요. 똑똑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아요. 류승룡씨는 재미있는 마케팅 아이디어를 많이 내죠.”
역시 칭찬은 할 게 많은가 보다. 멈추지 않으면 계속할 기세. “아, (유)해진씨도 있네요. ‘왕의 남자’, ‘해적’, ‘부당거래’, ‘극비수사’ 등 많이 작품을 했는데 해진씨만 만나고 오면 직원들이 다들 하트 뿅뿅의 눈으로 돌아와요. ‘나는 배우고, 너는 홍보하는 애야’라고 나누지 않고 편하게 해준대요. 송강호 선배도 그런 편이고요. 다들 빠뜨리면 안 되는데 어쩌죠….”
“예전에는 영화 홍보사들이 서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니 힘들었어요. 지금은 교통정리가 잘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다행히 17개 마케팅회사가 소화하는 것보다 영화들이 많아서 한쪽으로만 영화가 쏠리는 현상은 없어진 것 같아요. 저희한테 의뢰 들어왔는데 여력이 안 되는 어떤 경우는 일거리를 공유하죠. 상부상조가 되는 듯해요.(웃음)”
사실 배우로 만나고 싶었는데, 당연히 ‘영화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을 수밖에 없
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