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MBC "DMZ 평화음악회" 방송화면 갈무리 |
지난 8월 15일. 무심코 TV를 켰다가 MBC 'DMZ 평화음악회'를 보았다. 광복 70주년 기념 스페셜 콘서트였던만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 해외 팝페라 스타 사피나까지 화려한 크로스오버 아티스트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 무대에 이문세가 정갈한 수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는 약 10곡을 불렀고, 역시 이문세 노래는 좋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장면이 있었다. 이문세는 자신의 히트곡인 '소녀'를 부르기 앞서 "꽃다운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그 소녀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아픔과 슬픔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오늘밤 그 소녀들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라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수 백 수 천 번을 들었던 노래였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들으며 그의 말처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문세의 한 마디에 빼앗긴 나라에서 꿈도 희망도 모두 빼았겼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꽃처럼 어여쁘고 한창 꿈도 많았을 소녀들은 일본군의 희생양으로 짓밟혔지만, 광복 7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때 그 소녀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국가 차원의 정책도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도 없다.
깊은 밤, (애초 노래의 취지가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한 가수의 진심과 위로가 담긴 묵직한 노래에 나는 그 소녀들을 다시 떠올리고 추모하며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많은 죽음과 희생을 통해 쟁취한 존엄하고 값진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문세의 '소녀'가 울려퍼지던 임진각에서의 라이브 공연은 한국 음악계 거장의 진짜 '위엄'을 목도한 순간이기도 했다.
광복절을 맞아 여러 대형 공연이 펼쳐졌던 터다. 유명 가수들이 등장해 이른바 '폭풍 가창력' 혹은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뽐내며 그날을 축하했다. 더 나은 내일과 오늘은 염원하는 것도 좋으나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을 떠올리는 이는 없었다.
실시간 음원 차트를 본다. 나는 잘 났고, 남은 미친 듯이 비난하는 '디스'(disrespect)곡, 흔한 연애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시대 의식을 담은 노래는 굳이 찾지 않으면 듣고 보기 힘들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전쟁을 반대하며 '이매진(Imagine)'을 발표, 미국과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밥 딜런도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저항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김민기·양희은을 비롯해 다수 포크 가수들이 시대 정신을 담은 곡으로 당시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이후에는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로 국내 교육 현실을 꼬집고, '발해를 꿈꾸며'로 통일을 노래했다. 이처럼 당대 가수들은 시대에 저항하거나 위로하는 음악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해왔다.
가수뿐 아니라 많은 연예인이 수 많은 기부·봉사 활동에 참여해 귀감이 되고 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는,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훌륭한 노래가 주는 외침의 크기는 실로 엄청나다. 음악은 대중이 가장 쉽고 친근하게 접하는 매개체다.
계몽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
※ 필자 '음악 좀 아는 언니'는 가요·팝·공연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터테인먼트업계 종사자다. 가죽 치마를 즐겨입는 그는,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는 음악 평론가이기도 하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