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용산역을 지나 한강철교를 넘어가면 처음 만나는 역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곳에 기차는 서지 않는다. 기차는 빠른 속도로 노량진역을 지나 영등포역을 향한다.
기차는 서지 않지만 대신 동 틀 무렵부터 해 아닌 ‘달’이 질 때까지 수없이 많은 인파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 노량진역 앞을 채운다.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N포세대 수험생들의 꿈과 눈물이 펼쳐져있는 곳이 바로 이 노량진이다.
2015년 가을, 노량진역이라는 대명사를 마주하면 긍정적인 단어보다는 슬픔과 좌절, 사회에 대한 분노, 치열함, 경쟁 등이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 다양하게 뒤엉킨 감정의 종착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향한 열정 그리고 희망이다.
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목한 단막극이 시청자들을 찾는다. 31일 밤 방송되는 KBS 2TV ‘드라마스페셜3-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극본 김양기/연출 이재훈)가 바로 그것. 2014년 KBS극본공모전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작가는 실제 노량진에서 3년간 고시 생활을 한 경험을 살려 노량진민(民)들의 희로애락을 그린다.
방송에 앞선 30일 오후, KBS 별관 대본연습실에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이재훈 PD는 “노량진은 시험 준비를 하는, 스쳐 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며 “기차가 노량진역에 서지 않지만, 특수한 지역명이 들어가는 것은 메타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PD는 “드라마를 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담고 싶었다. 자칫 이게 어설픈 위로라고 생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량진을 ‘폭포’에 비유한 김양기 작가는 “노량진의 많은 수험생들은 깊은 폭포 속 잉어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이고, 그 깊이만큼 슬픈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 뜨거운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작품명에 대해 김 작가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노량진에서 나는 멈춰 있는데, 좋은 기차는 왜 노량진역에서 멈추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다르게 해석하자면 노량진에 사는 분들이야말로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희준(봉태규 분)의 일상에 한 때 유망한 체조선수였다는 유하(하승리 분)가 등장하며 그의 수험생활의 리듬이 깨지게 되고 혼란을 겪지만 그녀를 통해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촬영하며 느낀 노량진 라이프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봉태규는 “굉장히 바빠 보인다. 대부분 빠르게 걷고, 멈춰있는 분들 중 고개를 들고 있는 분들은 거의 없더라”며 “내가 속한 곳이 치열하다 생각했는데, 나와는 다른 치열함에 숙연해지더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기하면서 허투루 하거나. 내가 가진 감정에 휘둘려서 보여드리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극중 캐릭터인 모희준에 대해 봉태규는 “너무나 현실에 바닥을 붙이고 있는 인물이고, 그게 너무 리얼해 고민을 했다. 내가 자칫 잘못 건드릴까봐”라면서도 “이만큰 리얼한 캐릭터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선택하게 됐다. 정말 리얼하게 보여드리고 싶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PD 역시 봉태규 캐스팅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PD는 “태규씨가 이야기했듯, 대본이 현실에 닿아있는 게 장점이었다. 그 점이 좋았는데 현실이 너무 어둡다 보니 자칫 너무 드라마가 어둡게, 보기 불편하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태규씨가 갖고 있는 매력이 그걸 극복시켜주지 않을까 기대했고 역시 성공적인 캐스팅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어설픈 위로가 아닌, 공감을 주고 싶다는 이PD의 연출의 변은 과연 시청자에게 통할 것인가. N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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