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과연 예능 프로그램 속의 ‘학벌’은 대중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
최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고학벌’을 콘셉트로 내세워 특집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심지어 이런 세태를 반영한 듯 MBC ‘무한도전’에서는 이를 한층 비틀어 ‘뇌순녀’ ‘뇌순남’들이 등장하는 ‘바보전쟁’ 특집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런 ‘고학력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게 된 이유로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토크쇼가 과거에는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위주로 진행됐지만, 시청자들이 이에 싫증을 느끼면서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토크가 인기를 끌게 됐다”며 “옛날처럼 웃기는 이야기를 잘하는 연예인 뿐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아우르는 전문가나 연예인들이 토크 프로그램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성’이 하나의 재미가 된 예능계의 흐름에 따라 ‘뇌섹남’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고학력자’들이 예능계에 유입이 된 셈인데, 자칫 이런 현상들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 하재근 평론가 또한 이를 지적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서울대 나온 사람들은 S대라고 치켜세워주고, 외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엄친아’라고 극찬하는 것은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더 나아가 단순히 학벌이 좋다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학벌이 좋지 않지만 예능을 잘 하는 연예인들의 출연 기회도 박탈하는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런 ‘학력이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토크를 벌이는 특집’들이 방송국을 넘나들며 유행처럼 번져 시청자들마저도 식상해한다는 것이다. 현직에 있는 한 예능국 PD는 “별다른 콘셉트 메이킹 없이 학벌이 좋은 연예인들만 모아서 토크를 벌이는 걸 볼 때면 때론 ‘참 성의 없게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패널들이 둘러앉아 결국에는 공부 비법이나 고학력의 연예인으로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풀어놓게 되는데, 이런 토크들은 ‘자기자랑’ 혹은 ‘교육 방송’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고학력자’ 연예인들이 본업이 아닌 단순히 ‘학력’으로 주목받게 되면 결국엔 그 스타들의 콘텐츠조차 ‘자기자랑’ 혹은 ‘교육방송’으로 한정되고, 그만큼 생명력과 경쟁력은 짧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특히 하재근 평론가는 “지적인 사람들이 지적인 토크를 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지적’이라는 이미지를 왜곡되게 심어주는 게 문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단순히 외국 대학을 나와서 영어를 잘하는 게 ‘뇌섹남’ ‘뇌섹녀’의 기준이냐. 외국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을 취급해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기준”이라며 섣부른 일반화를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비슷하다. 안 그래도 학력이 사회적 ‘스펙’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편하게 웃고 싶어서 시청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를 ‘스펙’으로 받아들이고 박수쳐주는 풍토를 확인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는 거다. ‘라디오스타’의 ‘뇌섹남녀’ 특집을 시청한 한 누리꾼은 “이 사람들을 두고 우리가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부러움? 재미? 그 어떤 것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