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하 ‘치인트’)이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로맨스릴러’(로맨스+스릴러)에서 스릴러의 흔적은 사라지고 로맨스만 남게 된 것이다. ‘치인트’는 집나간 스릴러를 찾아올 수 있을까.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치인트’는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미소 뒤 위험한 본성을 숨긴 유정(박해진 분)과 유일하게 그의 본모습을 꿰뚫어본 대생 홍설(김고은 분)의 숨 막히는 로맨스릴러를 다루는 순끼 작가의 웹툰 ‘치인트’의 인기와 이를 지지하는 팬덤이 지나치게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남녀주인공 캐스팅은 물론이고 내용전개에 있어 원작의 팬들의 요구는 계속 이어졌고,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치어머니(‘치인트’+시어머니의 줄임말)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드라마 ‘치인트’를 압박하는 것은 원작 팬뿐만이 아니었다. 2010년 6월 시작해 현재까지도 연재 중인 웹툰의 양을 20부작 드라마 ‘치인트’ 안에 모두 넣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방대했고, 1년 전 과거와 현재, 유정과 백인호(서강준 분)의 고등학교 시절 벌어진 사건을 오가며 전개되는 웹툰의 구조 또한 드라마로 표현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했다. 웹툰을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치인트’는 영리한 드라마이다. 재창조가 아닌 원작의 재현을 선택한 ‘치인트’는 1년 전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들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현재의 유정과 홍설의 러브스토리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덕분에 원작에서 과거 포함 1년 이상, 현재 시각에서도 반 학기 이상이 꼬박 걸렸던 홍설과 유정의 연애는 단 3회 만에 빠르게 진행되면서 달달한 로맨틱코미디의 맛을 안방극장에 전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서 놓친 부분이 있다. ‘로맨스릴러’에서 로맨스를 강조하다보니 스릴러의 영역이 소홀해 진 것이었다. 물론 드라마 ‘치인트’의 최고의 캐스팅이자 ‘신의 한수’로 불리는 박해진이 자상한 선배와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를 오가는 유정을 연기하면 스릴러의 중심을 잡아주기는 하지만, 사실 원작에서 보여주는 스릴러는 범위는 단순히 유정이라는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웹툰 역시 ‘수상한 선배’ 유정이 스릴러의 물꼬를 터주기는 했지만, 이 작품이 ‘로맨스릴러’라는 별칭이 붙게 된 데에는 ‘킹 오브 진상’들이 홍설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터뜨려 주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정신 나간 노숙자로 인해 피를 보지 않나, 음흉한 대학 동기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스타일부터 모든 것까지 따라하다 못해 자신의 인생까지 탐내는 대학 동기로 인해 한바탕 고생을 겪기도 한다.
현재의 드라마 ‘치인트’는 ‘집중과 선택’에 있어 이 같은 내용들을 과감하게 드러낸 상황이다. 이는 남주연(차주영 분)이라는 캐릭터에서 잘 드러난다. 드라마에서는 짧게 등장하는 조연에 그쳤지만, 사실 웹툰에서 남주연의 초반 비중은 높은 편에 속한다. 원작에서의 남주연을 설명하자면 얼굴도 예쁜데 수석입학까지 한 재원이다. 그렇기에 유정이 남주연을 곁에 둔 것이었다. 유정이 남주연을 가까이 둔 건 그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조건이 나쁘지 않은 남주연이 자신의 옆에 있으면서 귀찮은 여자들이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웹툰에서는 남주연과 철저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를 방패막으로 내세우는 유정의 모습으로,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이용가치에 따라 곁에 두는 치밀함과 냉정함을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남주연은 그저 ‘유정의 곁을 맴도는 여 후배1’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다. 이는 웹툰이 드라마로 옮겨가면서 중요도가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남주연을 연기하는 차주영의 아쉬운 연기 또한 한 몫 했다. 남주연이 홍설을 질투하는 까닭은 단순하게 유정과 홍설이 가까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홍설이 자신의 수석자리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받던 관심과 사람들의 호평을 빼앗아 갔고, 자신이 원하던 유정까지 홍설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복합적인 심리를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결국 남주연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설정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남주연으로 인해 발발한 ‘노숙자 테러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것이다. 남주연이 노숙자를 홍설에게 보낸 이유는 “홍설로 잃은 점수, 홍설로 회복해야지”가 아니라 사실은 얄미운 상대 골려주기에서 시작됐다가 일이 커졌다는 것이다. 원작이나 드라마나 남주연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드라마에서는 남주연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과 개연성이 떨어지면서 극의 긴장감 역시 떨어지고 말았다. 원작에서는 유정을 찾아간 남주연과 달리, 학과 건물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남주연 앞에 우연히 유정이 나타나고, 자초지정을 듣고 그 앞에서 차가운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 장면은 극의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닮은꼴이 없어 보였던 홍설과 유정이 사실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무척 닮아 있다는 것을 3자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 사진=웹툰 ‘치즈인더트랩’ 캡처 |
‘치인트’의 지질한 스토커 오영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스릴러 약세에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처음에는 보라(박민지 분)에게 반해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다가, 학과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던 자신을 챙겨주던 홍설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후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오영곤은 ‘치인트’ 내 최악의 남자 중 한 명이다. 미행은 기본, 홍설이 아파트에 들어간 후 계단에 켜진 불을 세면서 그의 집을 유추할 뿐 아니라, 폭행과 폭언을 하는 등 온갖 섬뜩하고 진저리 쳐지는 행동들을 일삼는다.
웹툰 ‘치인트’를 로맨스릴러로 만드는데 일조한 오영곤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아직까지 드라마 ‘치인트’의 스릴러는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유정을 연기하는 박해진 또한 조금 더 김고은 앞에서 무장해제 될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천진난만해져야 다른 사람 앞에서는 소시오페스 같지만 홍설 앞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한 유정의 이중적인 모습이 더욱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배우를 탓할 수 없다. 예정보다 백인호가 일찍 등장한 탓에, 홍설 앞에서 더 해맑아지기 전 ‘서늘한 무표정’이 나와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박해진을 대체할 만한 사건과 스릴러적인 인물이 등장하지 못한 것 또한 유정의 무장해제를 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지만, 조금 더 극적인 ‘로맨스릴러’를 위해 박해진이 쥐고 있는 스릴러의 끈 일부분을 다른 배역에 넘겨줘야 할 때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