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흔히들 ‘여배우 기근’이라고 말한다. 여배우도 없고, 여배우가 설 자리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김희정만은 예외다. 쉴 틈 없이 방송사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그런 김희정에 ‘다작’의 비법을 물었다. 웃음 섞인 단 한 마디의 대답. “센 척 하지 않으면 돼요.”
김희정은 MBC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서 최마리 역을 소화하며 시청자들을 웃기고 때로는 울렸다. 겉으로는 언뜻 ‘웃음 담당’ 캐릭터 같지만 뜯어보면 아들을 거의 뺏기다시피 하고 ‘후처’ 취급을 받는 불쌍한 존재다. 그의 대표작인 ‘조강지처클럽’의 모지란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그는 이를 듣더니 “최마리는 진취적으로 산 친구”라고 고개를 젓는다.
↑ 사진=이현지 기자 |
“모지란과는 다르다. 최마리는 웃기는 캐릭터가 아니라 진취적이지만 슬픈 친구다. 투쟁을 하면서 절실하게 산 친구지.(웃음) 출발은 비슷했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가 나왔다. 최마리에 연민이 있다. 무식이 죄인 친구다. 아마 똑똑했으면 좀 더 다른 인새을 풀어갔을 텐데. 모지란이나 최마리나 ‘모지란’ 인생들이다.”
그에게 최마리를 연기하며 힘든 점은 없었냐고 물으니 “사실 찬빈이(윤현민 분)와 처음 보는데 ‘아들’이라며 애틋해야 하니까 감정이 잘 안 나왔다”며 회상했다. 그러면서 “내공이 빛났던 연기였다”고 웃음을 터뜨린다. 20대 최마리로 시작해 30대, 50대로 캐릭터의 나이대가 ‘훅훅’ 뛰니 초반에는 걱정이 많았단다.
“‘내 딸 금사월’은 스피드가 생명이었고, 그 힘이 대단했다. 작가님은 막 달리고, 배우들은 ‘이게 돼?’라고 걱정한 적이 꽤나 있었는데 역시 그게 다 됐다.(웃음) 작가님이 끌고 가는 힘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사연들이 훅훅 지나가니 쉽진 않았는데 세상에 쉬운 연기가 어디 있나.(웃음) 다행히 작가님의 색깔, 배우들의 호흡이 시청률 1위를 만든 것 같다.”
↑ 사진=이현지 기자 |
그랬던 김희정은 2015년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다. MBC ‘킬미힐미’ ‘맨도롱또똣’에 이어 2016년 ‘내 딸 금사월’까지 출연했다. 그 사이에 단막극 ‘알젠타를 찾아서’를 했고, 2016년엔 SBS ‘육룡이 나르샤’에도 출연했으며, 단막극 ‘미스터리 신입생’까지 소화했다. ‘다작’의 비법을 물었다. 김희정은 특유의 화통한 웃음을 지으며 “부르면 가니까”라고 대답했다.
“센척하지 않은 배우라서?(웃음)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배우다. 캐스팅 된다는 건 축복받고 감사할 일이다. 제가 성실함 하나만은 내세울 수 있다. 이렇게 오로도록 다양한 드라마에 참여하며 시청자를 만나올 수 있는 것도 복이고, 제 성실함도 조금은 인정받아도 될 부분 아닌가.(웃음)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안 좋게 끝난 드라마는 없다.”
그는 ‘캐스팅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이토록 오래 연기하고,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아직도 “캐스팅이 되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희정 또한 여배우들이 활약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라고 언급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물론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건 맞다. 나도 여자 양아치 잘 할 수 있는데 왜 조폭은 항상 남자들이냐.(웃음) 드라마, 영화가 남성 위주로 돌아간다. 옛날에 ‘여인천하’ 같은 사극에서는 여자들이 주인공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었다. 다른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설 때 저도 뿌듯하고 하다.”
김희정은 캐스팅에 대한 ‘감사’가 필모그래피에 비춰졌다고 말했다. 캐스팅으로 인해 다양한 캐릭터를 했고, 자신의 스펙트럼을 만들어줬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캐스팅을 통해 또 다른 옷을 입고, 계속 숙제를 받고 이를 풀어내고 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김희정은 바쁘게 사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만 하면 때론 재미 없을 텐데 매번 새로운 고민, 숙제들이 주어진다. ‘내 딸 금사월’을 하면서 20대 때도 안 입은 비키니를 입었다. ‘맨도롱또똣’ 때에는 몇 십 미터 잠수하기도 하고. 겁 없이 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이런 캐릭터를 놓고 나를 어떻게 떠올려주셨을까, 생각이 나면서 감사함을 느낀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여러 작품들을 했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단막극 출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드라마스페셜이나 특별단막극 같은 작품들을 사이사이에 채워넣었다. 사실 일일극, 주말극을 하는 배우들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단막극 출연은 매우 이례적인 일. 그렇게 열심히 단막극을 여기는 이유에 대해 김희정은 “저를 리셋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힘들긴 하다. 하지만 장편이나 연속극이 주지 못하는 함축된 감정 같은 건 분명한 매력이다. 제가 해야 될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도 있고. 한 편을 촬영하는 환경은 힘들지만 특유의 뜨거움이 있다. 작품 하나가 모두 함께 해냈다는 그런 느낌이 있다. 단막극을 열심히 해보자 마음을 먹은 건 저도 몇 년 안 된다. 점점 그 매력에 빠지고 있다.”
‘조강지처클럽’으로 인생작을 맞았고, ‘맨도롱또똣’으로 전에 없는 설레는 로맨스를 했다. ‘내 딸 금사월’의 ‘주책바가지’ 최마리를 거쳐 ‘육룡이 나르샤’ 강인한 여장부 강 씨 부인을 했다. 또 어떤 변신을 하게 될지 ‘다음’이 기대되는 김희정에,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감사하게 요새 저 보고 ‘연기 잘한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하지만 아직 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배우가 됐다고 생각 안 한다.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인 거다. 그 과정을 열심히 하고 싶고, 제가 나이가 먹어서 ‘좋은 배우였지’란 말을 들었으면 그 뿐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겸손하고, 좋은 선배들에게는 좋은 조언을 듣고, 후배들에게는 열정을 느끼면서 잘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