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의 목소리에 반했다. 다음엔 감성에 끌렸다. 그리고 또 다음엔 그의 음악에 놀랐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싱어송라이터 오왠(O.When)의 데뷔 EP앨범 'When I Begin'에 대한 감상이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오늘'을 비롯해 'Wonder Hole', '언젠', 'Picnic', '독백' 등 팝스러운 멜로디에 어쿠스틱, 인디팝, 모던록까지 오왠이 직접 쓴 다양한 곡들이 채워졌다. 범상치 않은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악보를 볼 줄도, 코드를 짚을 줄도 모른다. 그저 귀로 듣고 연주하고 마음 속 멜로디를 소리로 표현할 뿐이다. 과연 무서운 독학의 힘이다. 그의 음악이 더 궁금해졌다.
"노래를 통해선 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못했던 말들도 솔직하게 다 쓸 수 있더라고요. 그저 제가 느끼는 걸 그대로 쓰는 거죠. 저에게 꾸준히 솔직해지는 시간이에요."
그는 부산에서 버스킹 활동을 해오던 지난해 가을 어느날, 현 소속사에 데모 음원을 보냈다 단번에 발탁되면서 전격 상경했다. 불과 반 년 만에 데뷔 앨범을 내놓으며 이른바 지역구·아마추어 뮤지션에서 전국구·프로 뮤지션으로 발돋움했다.
부모님의 오랜 반대에도 "음악을 하고 싶다"던 소년의 어린 꿈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선명해졌다. 군 전역 후 본격적으로 기타를 잡은 그는 머릿 속 상상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단언컨대 성공적이다.
1번 트랙 'Wonder Hole'부터 청자의 귀를 사로잡는다. 피아노 반주 위에 펼쳐진 오왠의 음색이 지닌 매력이 상당하다.
곡은 어느 비 오는 날, 피아노를 치다 과거 자신의 이별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어렸을 땐 어리숙하고 서툰 사랑을 하면 금방 식어버리지만 이후엔 또 그리워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되돌릴 수도 없는, 그런 걸 내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다는 표현으로 담았습니다."
2번 트랙은 타이틀곡 '오늘'.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강 둔치에 앉아 썼다는 가사는 가슴이 아리다. "어디에도 기대기 쉽지 않은 청춘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인터뷰에 동석한 소속사 대표는 "헬조선으로 명명되는 오늘날 20대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3번 트랙 '언젠'은 오왠에게 특별히 뜻깊은 곡이다. 현 소속사에 발탁된 계기가 된, 바로 그 곡이기 때문. 그는 "젊은 땐 많은 불안감 속에 살지만 지나고 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밖에 사랑에 빠진, 고백 직전의 심경을 담은 4번 트랙 '피크닉', 무미건조해보이는 인생조차도 희망으로 바꿔 생각해보게끔 하는 5번 트랙 '독백'까지 어느 한 곡 빼놓을 게 없다.
솔직담백한 가사와 유려한 멜로디 그리고 잘 다듬어진 편곡까지. 기분 좋은 조합의 완성은 바로, 소속사 대표도 반한 그의 목소리다. 소속사 대표는 "데모를 듣고 처음부터 느낌이 확 왔다"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느낌이었다"고 오왠을 탐낸(?) 속내를 털어놓기도.
목소리에 대한 언급에 오왠은 "지금도 작업을 해보면 내 목소리가 어색하다"면서도 "음이 올라갈 때 허스키해지는 느낌은 좋은 무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덧붙였다.
"처음 기타를 잡게 된 건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를 들으면서부터였어요. 그러다 점점 파워풀한 창법의 가수들을 알게 되고, 더 많은 가수의 곡을 따라 부르면서 점점 변화를 주게 됐죠. 보컬 강의를 듣거나 트레이닝을 받은 게 아니라, 부르다 보니 가장 저 다운 창법을 찾게 된 거고, 그게 제 느낌이 된 거죠.
정식 데뷔 전부터 페스티벌 및 라디오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가를 높인 오왠은 오는 7월 열리는 사운드베리페스타를 통해 음악팬들을 만난다. "무대 서기 직전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좋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 모처럼 만난 기분 좋은 발견이다.
psyon@mk.co.kr/사진 DH플레이엔터테인먼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