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 선다는 것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스타로 발돋음하는 통과의례와 같았다. 그 만큼 수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런웨이를 걸었고 대중들은 그 무대를 기억한다.
앙드레 김 패션쇼는 그 규모만큼 스타급 배우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들이 참석했고 취재진은 늘 패션쇼장을 가득 메웠다. 또한, 수많은 작품을 오랜 시간 선보인걸로 유명하다.
때로는 패션쇼 취재 과정에서 다른 디자이너들의 불만도 들렸다.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 집중된 취재진의 관심이 못내 아쉬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출생한 앙드레 김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상경해 디자이너 최경자가 운영하는 양장점에서 일하며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로 196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그의 패션쇼를 '선경(仙境)의 마술'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1992년 올림픽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패션쇼를 열고 1996년 애틀란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 패션쇼 연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복 디자인도 맡았다.
2000년 이후 앙드레 김은 패션 디자이너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최고의 대표 브랜드가 된다. 해외 스타들의 주목을 받으며 마이클 잭슨, 브룩 쉴즈 등 도 그의 옷을 입었다. 이후 패션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힌다.
1997년에 문화훈장 화관장 수상, 2000년에는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은 데 이어, 2005년에는 한국복식학회 최고 디자이너 상을, 2007년에는 한국언론인연합회가 수여하는 제7회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8년에는 문화훈장 보관장(3등급)으로 훈위가 승급되었다. 2009년 아시아 모델상 국제문화 교류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8월 12일 우리곁을 떠날때까지 앙드레 김은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 패션계에 족적을 남겼다.
앙드레 김 이후 달라진 한국 패션계엔 아쉬움이 남는다. 패션쇼 무대도 줄었지만 서울패션위크 등 큰 무대에서도 디자이너의 작품보다는 연예인 셀럽이 주목받는 모양새다. 다시금 한국 패션이 세계를 향해 이름을 알리기엔 요원한가.
독특한 말투와 외모, 늘 같은 순백의 드레스 코드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트레이드 마크.
이야기가 담긴 앙드레 김 패션쇼의 백미, 애절했던 키스 피날레가 너무 빨리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지만 6년 전 바로 오늘 한국 패션계의 큰 별이 우리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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