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느린 아이를 타박하던 남자가 12년 만에 돌아왔다. 잰걸음이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자리 걸음 중이란다. 떠나간 연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화자는 바로 명불허전 보컬리스트, 플라워 고유진이다.
2004년 ‘걸음이 느린 아이’로 수많은 청춘을 울게 한 감성은 모처럼 발표한 신곡 ‘제자리 걸음’에 놀라울 정도로 고스란히 살아있다. 단적으로 다분히 의도된 작품의 결과는, 퀄리티적 면에선 완벽하게 성공적이다.
최근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유진은 ‘제자리 걸음’의 모티브 자체가 ‘걸음이 느린 아이’이고, 곡 역시 ‘걸음이 느린 아이’ Part.2 버전이라 설명했다.
“솔로 앨범은 오랜만이네요. ‘걸음이 느린 아이’를 다시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기존 곡을 재편곡할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새로운 곡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걸음이 느린 아이 같은 느낌으로 멋있게 만들어달라 작곡가에게 부탁했죠.”
곡의 스토리에 대해 언급하자 “아주 진상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본인만 생각하는 남자죠? 하하. 하나의 사랑으로 평생을 사는 바보 같은 남자이기도 하고요. 걸음이 느린 아이를 떠나보낸 후, 다시 돌아올 지 모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내용인데, 그런 내용이 고유진 음악의 트렌드인 듯 합니다.”
‘제자리 걸음’은 R&B풍의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의 믹스가 인상적인 팝발라드로 솔로 가수 고유진과 플라워 보컬 고유진이라는 두 가지 매력이 잘 담겨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곡에 대해선 스스로도 만족스럽단다.
“가사도 ‘걸음이 느린 아이’의 연장선에서 표현이 잘 되어 보자마자 OK했어요. ‘걸음이 느린 아이’에 대한 추억이 있는 분들에겐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자리 걸음’이 스스로에게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걸음이 느린 아이’가 고유진에게 갖는 상징성에서 출발한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걸음이 느린 아이’는 굉장히 고마운 곡이에요. 군대 다녀와서 바로 내놓은 곡이라 걱정 많이 했었거든요. 공백기가 있었는데, 제대하고 앨범 냈다고 좋아해주실까 걱정이 큰 상태에서 낸 앨범인데 굉장한 사랑을 받았죠. 이번 곡이 그런 곡의 연장에 있는 곡이라 나에게도 굉장히 의미 있는 곡인 것 같습니다. 고유진의 새로운 출발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제가 음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다양한 활동 중 낸 앨범이라 좀 더 새로운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내새끼’ 중 좋아하는 노래 중 한 곡이 될 듯 합니다.”
뮤지컬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최근엔 독립영화 ‘빈센트’를 통해 영화배우로 활동폭을 넓히고 있는 고유진이지만 여전히 그의 존재 이유는 노래고, 가수는 그의 1호 정체성이다.
“공백을 오래 두면서는 못 살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 모태는 가수니까요. 가수로서의 존재감마저 없어지면 안 되니까요.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앨범은 꾸준히 내고,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게 제 신조이자 목표입니다.”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그를 계속 열.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어쩌면, 소소한 꿈이다.
“가수로서 어느 정도 성공도, 실패도 해봐서일까요. 원대한 목표라기보다는 소소한 꿈이 있어요.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고, 배우로서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는 롤모델은 김창완 선배님이에요. 좋은 음악을 해오셨으면서 지금은 좋은 배우이기도 하시니까요.”
매 상황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성격은 때때로 찾아오는 좌절의 순간에도 그를 툭 털고 일어서게 했다.
“되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많았죠.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랑을 받은 적도 있었고, 굉장히 큰 기대를 갖고 음반을 발표했는데 무반응에 당황스럽고 의기소침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결과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느 순간 타이밍이 오는 거고, 그 타이밍이 맞았을 때 관객들이 그런 사랑을 보내주시는 것이겠죠. 뭔가를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고유진은, 여전히 도전하고 노력하는 ‘현재진행형’ 아티스트다.
변함 없이 오랜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팬들에겐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빙긋 웃으며 특별한 당부도 남겼다.
“예전처럼 뜨거운 반응이 나올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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