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역사책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저 웃기기 위해 떠난 LA행인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이번 특집은 ‘도산 안창호’ 특집이었다.
20일 오후 방송된 ‘무한도전’에서는 LA 특집 2탄으로, 멤버들이 할리우드의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시간이 그려졌다. 멤버들은 제작진이 주최한 가이드투어에 나섰으나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깥 풍경만 보다 끝나는 투어에 어이없어했다. 이들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내려서야 비로소 ‘한국인 세 명의 사인 찾기’라는 미션다운 미션을 받았다.
이들은 이병헌, 안성기의 핸드프린팅을 찾았으나 한 명을 찾지 못해 미션에 실패했다. 제작진이 데려간 곳은 바로 필립 안이란 할리우드에 진출한 동양인 1호 배우의 이름이 새겨진 타일이었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필립 안은 놀랍게도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큰 아들이었다.
멤버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인터체인지, 우체국, 한인회관 모두 도산 안창호의 이름을 딴 곳이었다. 또한 이들이 버스 안에서 보고 지나갔던 남가주대학교 한인연구소는 안창호의 가족들이 살았던 자택을 복원해놓은 곳이었다. 멤버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왜 이런 곳을 가냐”고 투덜거렸던 자신들을 부끄러워했다.
이들은 이어 대한인국민회총회관에서 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인 안필영 씨를 만났다. 안필영 선생은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담담히 말하며 조국을 위해 투신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무한도전’ 멤버들에 “이렇게 찾아와줘서 감사하다”며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는 “먼 곳에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멤버들은 도산 안창호의 외손자를 만나 각종 유품들을 둘러보고 아버지로서가 아닌 조국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안창호를 되돌아봤다. 멤버들은 한국에 돌아온 후 도산공원에 들러 안창호의 아들, 외손자와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안창호 의사의 묘에 인사를 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안창호의 삶을 돌아보며 한 말은 “정말 몰랐다”였다. 심지어 도산공원에서 오프닝 촬영을 한 적도 부지기수지만, 안창호의 묘소가 어디 위치한 줄도 몰랐다는 사실에 멤버들은 깜짝 놀랐다. 동포가 있는 곳이라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어디든 갔던 안창호 선생의 삶은 그의 이동 거리가 고스란히 적혀있는 여권을 보는 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국인이 몰랐던 LA 속 도산 안창호의 자취를 짚으며 ‘무한도전’은 우리가 얼마나 역사에 무관심한지를 지적했다. 할리우드 진출 동양인 1호 배우가 필립 안이라는 것도, 그가 도산 안창호의 아들이라는 것도 우린 몰랐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차’했던 그 순간 시청자들 모두 마음 한편에 부끄러움이 솟아났을 것이다.
우린 참 많은 것을 잊고 산다. 바쁘게 사는 일상 때문에 ‘모르고’ 지난 것들이 참 많다. 역사가 바로 그 중 하나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왜 잊고 살면 안 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바쁜 현실을 쫒아가기 위해 과거인 역사를 외면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런 시청자들에 짧은 시간이나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인생을 전하며,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없었음을 실감케 했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독립 자금을 모아 독립의 씨앗을 뿌렸던 안창호
담담하게 이 사실을 전하는 ‘무한도전’은 역사책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시청자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외면하고 사는지, 잊고 사는지 ‘무한도전’의 작은 울림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