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닥터스’는 제게 있어서 ‘터닝포인트’예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연기’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됐었죠. ‘닥터스’로 힘을 빼는 법을 배웠고, ‘매력적인 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느덧 데뷔 22년차 배우가 된 백성현이지만 그에게 한 번 달라붙은 ‘아역’이라는 수식어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이제는 소년과 청년을 넘어 이제는 남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백성현이었지만, 한번 굳혀진 이미지는 좀처럼 깨질 줄을 몰랐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올린 탄탄한 연기력과 예나 지금이나 훈훈한 외모는 백성현이 성인 연기자로서 발 돋음 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아쉽게도 성인이 된 이후 출연했던 작품 대부분 흥행과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런 백성현에게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비록 에피소드의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닥터스’는 그동안 백성현에게 없었던 트렌디한 이미지를 주었을 뿐 아니라, 20%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는 흥행의 맛도 봤던 것이다.
“솔직히 ‘닥터스’ 시놉시스 속 피영국이라는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어요. 그래서 출연을 고민했냐고요. 아니요. 하명희 작가님과 오충환 PD님께서 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출연을 제안해 주시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심지어 김래원 형님과 같이 연기할 수 있는데다, 캐스팅 된 배우 대부분이 현재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인공들이더라고요. 제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이미지와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것이고, 함께 연기를 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에 당장 출연하겠다고 했죠.”
“촬영을 하는 내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 백성현은 ‘닥터스’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했다. 두 달 반이라는 촬영 동안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지친다거나 무기력을 경험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놀면서 촬영한다고 느낄 만큼 행복했었죠.”
흥미로운 것은 ‘닥터스’를 통해 과거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연인호흡을 맞췄던 박신혜와 만났다는 것이다. “뿌듯했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백성현이었지만 내심 아쉬움도 적지 않았을터. 그도 그럴 것이 박신혜와 같이 출발을 했지만, 10년 후 다시 만난 박신혜는 ‘닥터스’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자신은 상대역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도 없이 않았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지만, 정작 백성현은 이에 연연치 않고 “각자의 길에서 서로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야 만났다”며 밝게 웃었다.
“신혜에게는 좋은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신혜와 함께 연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문자로 ‘신혜야 너만 믿는다’고 보냈죠.(웃음) 이번 작품에서 신혜와 만난 것이 한 수였어요. 신혜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만난 것처럼 늘 친근한 친구에요. 함께 연기하면서 여러모로 고마운 점이 많았어요.”
백성현이 연기한 피영국은 유급을 밥 먹듯이 해 동기들은 펠로우지만 혼자 레지던트 3년차인 의사로, 모든 것이 느긋하고 놀라울 정도로 낙천적인 인물이다. 이는 그동안 백성현이 주로 연기해왔던 인물의 성격과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실제 ‘인간 백성현’과도 반대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너무나 달랐기에 백성현에게 있어 ‘피영국’을 연기하는 것은 도전이었고, 백성현은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피영국을 연기하면서 연기 뿐 아니라 삶의 자세라든지 마음가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이 배웠어요. 극중 영국이는 혼자서 유유자적했고, 시험에 떨어져도 ‘시험 같은 거 못 볼 수도 있지’라고 말할 정도로 여유로웠죠. 저와 다른 영국이를 연기하면서 삶의 템포 늦추는 법을 알게 됐어요.”
백성현은 ‘닥터스’에 대해 ‘터닝포인트’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닥터스’의 시청률이 잘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나이에 시작해 꾸준히 연기를 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백성현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가 다가왔고, 이로 인한 방황의 마침표를 찍어준 작품이 ‘닥터스’였던 것이다.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1년 정도를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대중은 제가 하는 연기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하시는 것 같고…드라마나 영화 속 자연스러운 연기를 소화하는 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했고요. 제게 있어 연기는 쉽지 않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런저런 도전을 하던 도중에 ‘닥터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백성현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있어 제 몫을 해내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연기에 있어서 그 누구도 지적한 바 없었지만, 그럼에도 백성현은 ‘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도대체 연기의 무엇이 ‘22년차 배우’ 백성현을 힘들게 했을까.
“연기를 하는 것 그 자체에 집착을 했던 것 같아요. 연기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 항상 부담스럽게 만들었거든요. 실제로도 주위에서 ‘네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기에 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매력적인 연기를 못했던 같아요. 이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 ‘닥터스’를 연기하게 됐고, 그 곳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웠죠. ‘매력적인 연기’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해요.”
연기에 대한 고민과 방황에 빠졌던 백성현은 카메라를 벗어나 무대 위로 뛰어 올랐다. 돈도 아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도 아닌, 관객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연기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른 무대였다. 소속사의 도움도 뿌리쳤다.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한 만큼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회사(소속사)에 정말 고마운 것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제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셔다는 거예요. 어쩌면 제 방황을 느꼈는지도 모르죠.(웃음) 무대를 준비하면서 행복했고,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제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어요. 연습도 혼자, 헤어도 메이크업도 샵을 가지 않고 제가 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뭔가 독립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제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지더라고요.”
백성현은 “독립을 한 이후 엄마의 소중함을 알지 않느냐. 딱 그 기분이었다”고 웃으며 연극과 뮤지컬에 도전했던 소감을 전했다. 힘들었지만 무대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백성현은 자신이 한 뼘 더 자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고백했다.
“저는 끼나 재능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한 없어요. 그저 준비한 것을 열심히 하는 배우일 뿐이죠. 무대와 ‘닥터스’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만났다는 거예요. ‘닥터스’를 하면서 인상적인 배우가 둘 있었는데 바로 성경이랑 민석이였어요. 둘 다 끼가 많은 매력적인 배우죠. 연기 스타일이 저와 정말 다른데…뭐랄까, 본능적이어서 특별하다고나 할까요. 특히 민석이 연기를 보면 ‘어쩜 저렇게 표현할 수 있지’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고 놀랍더라고요.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문제와 싸워 나갔던 백성현은 지금까지 참 바쁘게 달려왔다. 계속해서 연기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털어놓는 그에게 슬며시 “연애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저는 여자사람친구 자체가 없어요”라고 말문은 여는 백성현을 보며 드디어 달달한 이야기가 나오나 싶은 찰나, 이야기는 어느새 또 다시 연기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
“개인적으로 배우는 연애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진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단점까지 끌어안으면서 깊은 이해를 하게 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랑관이 ‘상대방의 고독까지 이해하는 것이다’인데, 이게 넓게 보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죠. 잘 포장된 겉모습 뿐 아니라, 내가 연기하게 되는 캐릭터의 결핍과 부족한 면을 봐야 하고, 이 마저도 이해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연기하는 것, 그게 바로 진정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끝없는 연기 욕심을 드러낸 백성현의 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백성현은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라고 답했다.
“무대에 서면서 관객을 책임진다는 것을 배웠어요.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을 보면서 ‘가는 길에 즐거운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아요.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
실제로 만나본 백성현에는 그동안 자신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린 듯 한결 편안한 기운이 가득했다. 자신에게 왔던 고비를 넘기고 한 단계 성장한 백성현, 그는 그렇게 남자가 돼 가고 있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