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노년의 파워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배우 윤여정은 이번에도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박카스 할머니로 변신한 그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노련한 연기력으로 극에 잘 녹여내며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죽여주는 여자’는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 소영(윤여정 분)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소영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소개된다. 이와 동시에 자신을 죽여 달라는 단골 고객을 만난 소영은 이후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이자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50년 연기 인생을 자랑하는 윤여정이지만 그에게도 ‘죽여주는 여자’는 도전이 필요했다.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고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성매매 장면을 촬영하는 부분에서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특히 노인을 죽이는 부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다.
“영화를 엎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소재를 극단적으로,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은 점이 좋았다. 그 여자는 이미 생을 포기했던 여자인 것 같다. 생을 포기하고 꾸역꾸역 연명하고 살고 있는 상황에 고객이었던 할아버지가 부탁을 했을 때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았다. 멀쩡한 신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중풍에 걸려 자존감이 낮아진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이지 않나. 중풍이 나아진다는 희망도 없고, 그 상황이라면 그렇게 기다리느니 죽여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만 놓고 보면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인들 사이에서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난 죽여주는 여자’와 ‘그들의 죽음도 조력하게 되는 여자’라는 중의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러나 윤여정은 ‘죽여주는 여자’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재용 감독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감독과 많이 싸웠다. 중의성으로 감독이 지은 거지만 즉각적으로 하면 지저분한 것 같고 신경질이 나더라. 친구들도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라고 했더니 ‘더럽지 않냐’라고 하더라. 그래도 결국엔 그 제목을 섰다. 근데 이해는 한다. 박카스 할머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감독의 뚝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은 그대로 갔지만 윤여정은 이재용 감독이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는 그냥 이재용 감독을 믿고 이재용 감독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촬영에 임했다.
“결국 사람이다. 작업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작업 내용이 중요하진 않다. 이재용 감독을 믿었던 건 극단적으로 안 풀 거라는 신의가 있었다. 몇 달을 너무 불평만 하고 못 견디고 그랬던 것도 미안하다. 나는 배역을 택할 때 용감한 편이다. 이 나이에 잃을 게 없지 않나. 나는 환갑 넘어서부터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즐겁게 살리라 했다. 그저 이재용 감독을 믿고 이재용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소영 역을 맡은 윤여정은 노인의 삶과 죽음, 성매매 등 쉽지 않은 인생사의 대목들을 실감나게 그리며, 극을 이끌어간다. 제 몸 하나로 먹고 사는 밑바닥의 삶을 사는 여자를 끌어내는 것을 연기한 그는 노인의 삶과 죽음, 성매매 등 쉽지 않은 인생사의 대목들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영화는 소영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 등 이웃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소개된다. 윤여정은 다리가 불편한 청년을 연기한 윤계상과 트렌스젠더 안아주와의 호흡을 맞추며 극의 인간미를 더했다.
“윤계상은 너무 착하더라. 아이돌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가 하는 행보를 보면 돈 안 되는 영화를 쫓아다니고 한다. 용케 그런 작품을 족집게 같이 고른다 싶었다. 이런 영화도 걔가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재용 감독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열심히 배워보고 싶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청년이었다. 이재용 감독을 통해서 들었는데 이 세상에는 트렌스젠더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더라. 이재용 감독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이런 사람이 있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 했다. (안아주는) 똑똑한 여자다. 처음 연기를 하는 거니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했다.”
‘죽여주는 여자’에는 생존을 위해 유일하게 가진 몸을 팔아야 하는 주인공과 노년을 홀로 가난 속에 보내야 하거나, 죽는 것보다도 못 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노인 문제를 진중하게 풀어놓는다. 특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기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은 물론, 조력자살을 하는 과정을 통해 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던진다. 작업에 임한 윤여정 역시 죽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한 부분이 많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책을 읽었는데 답은 없더라. 그거 하나는 않았다. 무대 위에서 죽겠다는 표현에 대해 말이다. 자기가 하던 일을 하면서 죽는 걸 제일 바란다고들 하더라. 죽음이라는 게 당연 무섭고 공포스럽다. 사물에도 질서가 있지 않나. 꽃도 피면 지고, 영원히 불로장생이 있지는 않다. 요즘엔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가를 더 생각한다. 고령화시대에서 어떻게 잘 죽느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