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얘기지만 윤삼육 작가를 알지 못했다.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영화인 중에도 윤 작가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윤 작가는 1960년대부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고교얄개', '장마', '최후의 증언', '피막', '뽕', '내시' 등 수백 편의 시나리오를 남겼고, 1993년에는 이덕화에게 모스크바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살어리랏다'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윤봉춘 감독의 아들이고 배우 윤소정의 오빠이기도 하다. 윤 작가의 두 딸 역시 모두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계 집안이다.
윤 작가는 27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53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한국영화발전 공로상을 받았다. 몸이 불편한 그를 대신해 윤소정과 딸들이 대리 수상했다.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애쓴 이를 긴 시간을 할애해 소개하며 숙연한 분위기를 전해야 했지만 대종상영화제는 최근 내우외환으로 영화인들로부터 멀어졌다. 참석자들이 많지 않아 쓸쓸했다.
수상을 축하하는 이들도 당연히 '거의' 없었다. 많은 젊은 영화인도 윤삼육이라는 이름을 몰랐을 것이기에 이런 자리로나마 선배의 활약을 듣고 감탄하며 축하하는 게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런 기회를 놓쳤다. 물론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주최 측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불참하면 상은 없다'는 말의 여파로 수상자 대부분이 불참한 데 이어 올해도 이병헌을 제외한 후보 대부분이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트로피 대부분을 대리 수상자가 챙겨갔다. 지상파 중계로 그나마 대중과 접합 지점이 있었는데 올해는 지상파가 아닌 K-Star 채널과 유튜브(YouTube), 페이스북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챙겨보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볼 수 없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데도 관심이 시들해졌으니 말 다했다.
올해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병헌은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20년 전 신인상으로 처음 대종상 무대에 섰던 기억이 난다"며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그 무대에 서고 싶은 명예로운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시상식에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상을 받는다는 게 기쁜 일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 받은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선 게 솔직한 마음"이라며 "대종상이 말이 많았고 문제가 많았고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5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며 명예를 이전처럼 찾는 게 단시간에 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이병헌은 "하지만 53년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없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현명하고 해결책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변화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이 돼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언젠가 후배들이 20년 전에 이 시상식에 내가 왔을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후배들이 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대선배들이 아주 큰 뜻을 가지고 이 영화제 만들었을 텐데 이제 우리 후배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최우수작품상을 호명하기 위해 무대에 선 정중헌 대종상 심사위원장도 "잘 차려놓은 밥상에 손님이 안 온 측면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심사위원장으로서 어떤 상이든 심사만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17명이 8일 동안 출품작을 꼼꼼히 본 뒤 공정성을 기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심사에 공정성을 기하려 노력했다는 정 심사위원장의 말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손님이 왜 안 왔는지는 대종상 측이 더 잘 알 거다. 누구나 참석하고 싶었던 대종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노력해야지 영화인들이든 팬들이든 돌아올 것 같다.
또 이병헌이라는 배우 한 명이 대종상의 정상화를 얘기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모두가 노력해야 최고(最古)의 영화제가 존속된다. 물론 그 이름과 권위에 기대 변화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절치부심해 내년에는 제대로 시상식을 준비할 수 있을까.
다음은 수상자(작)
▲최우수작품상=내부자들
▲남녀주연상=이병헌(내부자들) 손예진(덕혜옹주)
▲남녀조연상=엄태구(밀정) 라미란(덕혜옹주)
▲감독상=우민호(내부자들)
▲신인감독상=조정래(귀향)
▲남녀신인상=정가람(4등) 김환희(곡성)
▲뉴라이징상=김희진(인천상륙작전) 최
▲인기상=이범수(인천상륙작전)
▲기획상=김원국(내부자들)
▲시나리오상=우민호(내부자들)
▲의상상=권유진 임승희(덕혜옹주)
▲미술상=조화성(밀정)
▲음악상=최용락 조성우(덕혜옹주)
▲녹음상=김신용 박용기(곡성)
▲첨단기술특별상=대호
▲편집상=김선민(곡성)
▲조명상=김창호(곡성)
▲촬영상=홍경표(곡성)
▲영화발전공로상=윤삼육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