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비 고두심 김성균 사진=더홀릭컴퍼니 |
‘채비’는 30년 내공의 프로 사고뭉치 인규(김성균 분)와 그를 24시간 케어하는 프로 잔소리꾼 엄마 애순(고두심 분)씨가 머지않은 이별의 순간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45년 연기 내공의 고두심과 충무로 대세 배우 김성균이 모자(母子)로 만나 호흡을 맞췄다. 그동안 다양한 엄마 역을 통해 대중들과 만났던 고두심은 ‘채비’를 통해 다시 한 번 국민엄마의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7년 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보인 고두심은 ‘채비’ 출연 계기에 대해 모녀(母女)로 출연한 유선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김성균 역시 출연하기까지의 결정적인 한 방은 유선의 말 한마디였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고두심 “유선이 전에 제 드라마에서 딸로 하고 있었는데 ‘채비’ 시나리오를 주더니 읽어보라고 했다. 사실 작품을 하고 있을 때 책을 던져주면 배우들이 하나에 집중을 잘 못한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면서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아침에 만나자마자 어떻게 됐냐고 묻더라. 그 뒤로 집에서 천천히 읽어보고는 딱 내 역할이다 싶었다.”
“아들은 누가 하게 될까 궁금했는데 마침 김성균이 한다고 하더라. 이전에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정말 좋은 배우구나 싶었다. 얼굴이 미남형은 아닌데 다양한 역할이 잘 어울렸다. 꼭 함께 작품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마침 유선이 와서 틀림없이 성균이 한다고 하더라. 그 순간 그림이 딱 그려졌다. 그래서 내가 이건 해야겠다. 좋은 기회가 빨리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성균이한테 가서는 내가 무조건 한다고 말했다더라. 유선의 공이 컸다. 감독님은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눈빛을 보고 정말 잘 만났다는 생각을 들었다.”
김성균 “저도 결정적인 한방은 유선누나가 고두심 선생님이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인규 역은 책 봤을 때 아이돌 이미지였다. 예쁘게 생긴 친구가 이런 역을 하면 미운 짓을 해도 예쁘게 보일 텐데 내가 하면 정말 미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선누나가 대본을 읽으라고 줬을 때 인규 역인지 몰랐다. 나중에 인규 역인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읽었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 너무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내려놨는데, 아내가 읽고 펑펑 울었다. ‘감독이 정공법으로 차곡차곡 기교 없이 쓰는데, 울림이 있지 않느냐. 진심을 담아서 쓴 것 같다.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꽂혀서 슬프다’고 했다. 또 동시녹음 형한테도 보여줬더니 ‘자기는 돈 안받고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심지어 투자하고 싶다고. 내가 시나리오를 잘 못 보는 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아는 이야기겠지만 진심은 통하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채비’는 예측 불가한 반전을 담은 이야기가 아닌 익숙한 소재이지만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두 모자(母子)의 분주한 이별 준비 과정은 보는 이들을 속수무책으로 눈물바다에 빠트리곤 했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김성균은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예고했다. 그는 ‘채비’에서 30년 내공 프로 사고뭉치 인규 역을 맡았다. 김성균이 연기한 인규는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로, 누군가의 24시간 보살핌이 필요한 인물이다.
김성균 “주로 다큐멘터리를 찾아 봤다. 엄마와 장애가 있는 분들의 영상을 보고 즐거운 일상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반찬 투정도 하고 입기 싫은 바지도 안 입으려고 하는 모습이 여섯 살 된 우리 아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막무가내로 떼쓰고, 삐치는 지점은 진짜 우리 아이들을 참고 했다. 처음에는 인규에 대해 무거운 장애를 표현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준비했다. 첫 촬영 때 복지관을 가는 장면이었는데 선생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셨다. ‘뒤에서 이런 장난도 해보고 정신 사납게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연기를 해봤는데 그림이 딱 맞았다. 그날로 캐릭터를 확 바꿨다. 몇 개월 동안 고민한 것보다 하루 엄마랑 맞춘 그림이 전체 톤이 돼 버렸다. 너무 감사했다.”
고두심 “정말 좋았다. 극중에서 죽는 날을 앞두고 아들을 시설에 맡길까 하고 갔는데 시설이라는 게 한사람만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닌 공동 시설이지 않나. 엄마 입장에서 그걸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얘를 맡기면 안되겠다. 죽는 날까지 내가 어떻게 해 보겠다 하는 결심을 갖게 됐다. 여기에 인규는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갔으니까 뒤에서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쳐보면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건넸었다. 사실 연기할 때 남을 터치하면 후배라도 싫어한다. 조심스러운 지점이다. 그리고 얘기하는 사람도 조심스러워해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도 어느 정도 가볍게 받아서 처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겁게 받아서 ‘너나 잘하세요’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성균이는 타당성도 있고, 그래볼까 하다가 방향을 트는 쪽이었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 아무한테나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도 사실 싫다. 나를 가지고 얘기하면 좋지 않다.”
함께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모자(母子) 케미는 애절하면서도 유쾌함이 넘쳤다. 무작정 가슴 아픈 이야기로 파고드는 것만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지막으로 눈 감는 그 날까지 혼자 남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찌 보면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모성애일 수 있지만 ‘채비’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한 진심을 담아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 또한 촬영 현장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성균 “너무 재밌었다. 촬영 날이 기다려졌다. 합이 맞았을 때에 그 짜릿함이 굉장히 컸다.”
고두심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편안하고 가족 같았다. 밤새 촬영하고 아침 일찍 나오라고 하면, 그냥 여기서 자는 게 어떠냐고 할 정도였다.”
“사실 제목자체가 한눈에 보여 지는 영화 같아서 처음에는 꼭 그래야 하나 싶었다. 찍으면서도 감독님과 얘기를 하다 보니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싶었다. 사람이 누구든 만나면 헤어짐이 있으니까 그 마음에 갖는 각오들이 채비일 수 있고, 여기서 저기로 발자국 떼는 것도 마음가짐을 하는 게 틀림없으니까
김솔지 기자 solji@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