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앞둔 감독은 왜 어깨를 들썩이며 그렇게 울었을까.
“7~8회 대본을 볼 때 슬픈 대목에서는 울었습니다. 감정이입 정도가 아니라 이상한 상황인데 그 인물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울었죠. 16회까지 대본작업을 하면서 철철 울었습니다.”
안판석 PD는 2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의 시작은 여느 때처럼 평범했다. 안 감독은 “작가와 대본을 짤 때 저널리스틱하게 짜지 않는다. 드라마하우스 대표를 한 적이 있는데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던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이 30대 중반 윤진아 나이다. 그 친구 만나서 사는 얘기를 들으면서 메모했다.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루면 뭔가 얘기가 빨려 들어오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쁜 누나’는 8회까지 방송된 지금 신드롬급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시청률 7%를 오락가락 한다는 수치는 의미가 없다. 여자 둘만 모여도 이 드라마 얘기를 하고, SNS엔 온통 두 사람의 달달한 사랑 얘기로 도배되어 있다. 또, 손예진 정해인이 진짜 사귀는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 방영 한 달만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3위에도 올랐다.
“일하는 중간에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힌 감독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 같았다. 그는 내놓는 작품마다 성공을 하는 비결을 묻자 긴 답을 내놨다.
“‘요즘 뭐가 먹히지’ ‘요즘 사람들이 뭘 좋아하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요. 나 또한 하나의 관객으로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며 신문도 소설도 보고 식구들도 만나며 살죠. 내가 지금 골똘하게 관심을 갖고 있고 재미있어 하는 생각을 메모해놓고 꺼내서 작품을 만듭니다. 아직 확인해 본 바는 없지만 인간은 보편적일 거라는 믿음이 있고 이런 내 기록을 소중히 다뤄 작품에 잘 배열하는 거죠. 이것이 내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고 아직까지 유효하며 영원히 유효할 것이라 봅니다."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역시 특별할 것 없는 그 일상에 집중했다. “하루하루 전쟁을 치른 뒤 살아남은 자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어느 신문에서 읽었다는 시 한 줄을 읊었다.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아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오늘 넌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그는 “이 시가 내 가슴을 쳤다”며 “오늘 하루는 살아남은 자들의 일상임을 드라마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시청자들이 이 미묘한 차이를 봐줄 거란 믿음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의 드라마엔 언제나 스토리만큼이나 음악이 훌륭하다. 멋진 음악을 고르는 것 또한 좋은 대본을 만나는 일처럼 중요한 ‘연출 포인트’다.
“드라마에서 음악은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사랑은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음악이 더 위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마 10년 후 윤진하가 길을 걷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면 울 것이다. 음악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음악은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예쁜 누나’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설레는 어른들의 진짜 현실 멜로를 그리며 호평을 이끌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이 드라마에 대해 감독은 “후반부는 윤진아와 서준희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춰 봐달라. 무엇이 이들을 성장하게 하는지,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초점으로 끝까지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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