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현실은 영화를 압도한다. 그런 현실을 스크린으로 옮길 때, 대부분 다시 앞서가려는 욕심에 작위적인 무리수를 두곤 한다. ‘암수살인’은 그런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감히 힘을 뺀다. 그토록 기다렸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린 범죄 실화극의 탄생이다.
“너 같은 놈을 내가 이겨서 뭐 하냐? 그냥 두면 형사인 게 쪽팔리니까 그러지.”
형사 형민(김윤식)은 집안도 좋고 형편도 좋다. 그동안 형사물에서 늘 봐왔던 배고픔에 허덕이는, 꾀죄죄한 단벌신사도, 지켜야할 처자식이 있지도 않다. 멀끔한 셔츠 차림에 취미는 골프, 고급 세단도 몰고 다닌다. 그런데도 유일하게 암수살인을 쫓는 형사다.
자신이 7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범(태오, 주지훈)의 자백을 믿고 암수살인(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쫓던 형민은 그가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뒤섞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공소시효와 부족한 증거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힘을 빼니 능력치는 최대치로 올라간다. 살인범은 도대체 왜 수많은 형사 중 형민을 골라 추가 살인을 자백했는지, 그가 하는 말 중 어디서부터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실화 모티브라고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두 캐릭터의 밀도 높은 심리전과 함께 펼쳐진다. 배우들이 덤덤하게 연기할수록 몰입감은 치솟고, 작위적인 요소들을 빼니 보다 더 영화스럽게 다가온다. 이것이 실화임을 알았을 때 몰려오는 뭉클함과 묘한 잔상은 또 어떻고.
특히 김윤석과 주지훈의 만남은 올해 가장 반가운 조합이다. 왜 이제 만났나 싶을 정도로 신선하고도 팽팽하고 극명한 색깔 대비가 흥미롭다. 멀티 캐스팅이 대세인 요즘 극장가에서 투톱 주연의 모범 답안을 제시해준다. 주도권을 엎치락뒤치락 주고받는 두 배우의 핑퐁 호흡은 이 영화의 또 다른 킬링 포인트다.
영화는 범인을 찾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액션신 없이도 충분히 쫄깃한 긴장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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