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첫 결빙, 어디가 얼어야 결빙 확정될까...기준은 ‘한강대교’?
한강 첫 결빙이 화제다. 24절기의 마지막 절기 '대한'인 21일 강추위로 한강이 올겨울에 처음 얼어붙었다.
결빙은 '얼음으로 인해 강물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얼음 두께와는 무관하며, 가장자리가 어는 것도 결빙 '판정'과는 관계가 없다.
↑ 한강 첫 결빙, 어디가 얼어야 결빙 확정될까...기준은 ‘한강대교’? |
결빙 기준 관측지점은 한강대교다.
정확히는 한강대교 노량진 방향 2번째와 4번째 교각 사이다.
상류 쪽으로 100m 부근의 남북 간 띠 모양 지점이 얼었는지에 따라 결빙 여부를 판정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과거 지리적 조건과 생활상, 기상청의 위치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결빙 관측은 1906년부터 시작됐으며, 당시에는 한강의 노량진 나루와 마포 나루 등을 통해 배가 사람과 물자를 싣고 이동했다.
6·25 이전까지 생긴 다리도 한강철교가 유일했다.
현재 관측 지점의 유동인구도 가장 많았다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또 이 지점은 유속이 빨라 한강에서 가장 늦게 얼어붙는 곳 중의 하나이며, 노량진 나루 쪽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손쉽게 관측할 수 있다.
기상청의 모태가 된 '경성측후소'는 관측 시작 2년 전인 1904년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자리잡았다.
측후소와 가까운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의 공식 설명은 1906년 당시 노량진 나루가 한강의 주요 나루 가운데 하나였으며, 관측의 접근성이 용이했기 때문에 이 지역이 기준점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기상관측 역사는 1880년대 전후로 추정되며, 일본은 1884년 부산전신국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
경성측후소를 비롯해 각지에 측후소가 세워졌고 바다 건너 제주도에는 1923년에 측후소가 설치됐다.
측후소는 이후 기상대를 거쳐 기상청으로 격상됐다.
한강 결빙은 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도시화의 영향을 받아 과거와 양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1950년대까지는 주로 12월에 한강이 결빙됐지만 이후에는 결빙 시점이 1월이거나 아예 결빙이 없었던 해도 7차례 있었다.
1960년과 1971년, 1972년, 1978년, 1988년, 1991년에 결빙이 없었으며, 가장 최근은 2006년이었다.
결빙 일수도 줄었다.
1900년대 80일에서 1960년대 42.2일, 1970년대 28.7일, 1980년대 21일, 1990년대 17.1일, 2000년대 14.5일 등이다. 한강의 얼음 두께도 얇아졌다.
과거 30㎝ 이상으로 두꺼웠지만 최근에는 5∼10㎝ 안팎으로 얇으며, 해빙이 빨리 도래하기도 한다.
한강 얼음 위에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거나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하는
'당일 결빙·해빙'을 비롯해 결빙과 해빙 사이 기간이 짧은 경우도 종종 있다.
1986년과 1987년은 결빙 하루만에 해빙됐고, 작년은 당일 결빙과 해빙이 일어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한강이 1월 3일 결빙됐지만 살얼음 형태로 얇게 얼어붙었다가 당일 녹았다"고 설명했다.
한강 첫 결빙
온라인 이슈팀 @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