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소설가 이청준, 배우 존 웨인에서 법정 스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폐암. 폐암은 간암, 위암과 더불어 가장 치명적인 ‘3대 암’에 속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폐암은 암종 발생률 순으로 남자는 1위, 여자는 3위이며 사망률로는 1위를 차지한다.
폐암이 이렇게 무서운 질병이 된 것은 간암과 더불어 초기 발견이 유독 어려운 데 있다. 폐암 환자의 15% 정도는 무증상일 때 폐암으로 진단된다. 그나마 나타나는 증상인 기침, 가슴 통증, 흉통 등은 가볍게 여기기 쉬운 증세며, 이미 타 기관으로 암이 전이됐을 말기까지도 증상이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정기검진조차 타 암종보다 효력이 낮아 5대 암 검진 사업에서 제외되어있는 상황이다.
또한 폐를 망가뜨리는 주범은 흡연이지만, 최근에는 흡연과 상관없이 폐암 환자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상 폐암 발병자 중 비흡연자 비중이 무려 15%로 나타났으며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87.8%가 흡연 경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라돈 가스와 석면, 부엌 연기 등 생활 속 발암물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폐를 병들게 하는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운 좋게 초기에 폐암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폐암은 암의 병기와 무관하게 환자가 수술을 견뎌낼 수 있는 상태여야 수술을 진행한다. 폐엽을 절제했는데 오히려 호흡 기능이 저하되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령자거나 천식 등의 이유로 폐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폐암 초기라 할지라도 수술을 받기 어렵다. 남은 선택지는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뿐이다.
◆ 기존 항암요법의 단점을 극복한 표적 치료요법 주목
↑ 항암치료 받는 환자 |
폐암에는 타 암종과 마찬가지로 항암치료도 시행되지만, 더 나아가 기존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줄인 ‘표적항암제’의 개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표적항암제는 세포의 신호 전달 체계를 방해해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치료법으로 실제 폐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EGFR(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는 세포의 성장을 제어하는 데 기여하는 유전자로 이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가 과잉 성장해 암 종양으로 변질되게 된다. 폐암환자가 조직 검사를 통해 EGFR 돌연변이로 밝혀지면 표적치료제를 통해 EFGR을 억제하게 된다. 그러나 표적 치료제도 피부발진, 설사, 손톱주위염 등 부작용이 존재하며 기존 항암제와 마찬가지로 1년 내 내성이 생겨 약을 계속 바꿔야 하기에 부작용과 내성을 더 줄인 버전이 지금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약물이 아닌 환자 자신의 세포를 사용하는 ‘면역세포 치료’가 폐암의 새로운 치료법으로서 떠오르고 있다. 환자의 면역체계의 사령관 역할을 하는 수지상면역세포를 추출 후 목표 암항원을 심은 후 대량 배양하여 환자의 몸에 다시 주사, 인체에 돌아다니는 전이 암조직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술, 항암, 방사선치료와 병용 가능하며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로 배양되었기에 내성이 생기지 않고 부작용도 경미하여 기존 항암제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폐 기능을 보전하는 방사선 치료의 발전
과거 방사선 치료 성적은 1, 2기 폐암의 경우 수술로 얻을 수 있는 성적에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방사선이 목표 병소가 아닌 주변 정상 조직까지 상해를 입힐 뿐 아니라 폐 자체가 타 장기보다 방사능에 취약한 기관이기에 부작용의 위험이 컸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상진단장비 기술이 발전하고 폐의 병소 부위에 정확히 방사능을 쏘는 기술이 개발되어 폐암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 중입자 치료기 |
특히 대표적 방사선 치료인 X선과 양성자선에 이어, ‘꿈의 암 치료’로 불리는 중입자 치료가 폐암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이온을 빛의 속도의 80%까지 가속해 병소에 정확히 투척, 암세포의 DNA을 깨뜨리고 조직을 태워버리는 원리다. 특히 중입자 치료는 조사 시 체내 깊숙한 곳에 들어가 목표 지점에서 에너지를 급속히 방출시키는 브래그 피크(Bragg Peak)가 있어 다른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고 목표 병소의 효율적 제거를 기대할 수 있다.
폐암은 조직에 따라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 중 중입자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폐암의 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으로, 선암, 편평상피암, 대세포암을 포함한다.
일본국립방사선종합연구소(NIRS)의 전 센터장 츠지이 히로히코 박사는 “중입자 폐암 치료는 수술적 절개 과정이 없어 호흡 기능을 보존한 채 종양 제거가 가능해 환자의 부담이 적다.”며 “수술이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거나 스스로 수술을 거부한 폐암 환자 중 중입자 치료를 받고자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츠지이 박사는 “중입자 치료는 최대 3주, 12회 조사로 치료기간이 짧으며 통원치료가 가능한 방법.”라며 “특히 폐암의 경우 거듭된 임상연구를 통해 1일 1회 조사로 치료 기간을 단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또한 NIRS의 폐암 중입자 치료 실적에 대해 츠지이 박사는 “중입자 치료를 받은 말초형 1기 폐암 환자 151명의 경우 5년간 국소제어율(치료 부위에서 재발 및 재연이 되지 않는 경우)가 80%, 원병생존율(폐암이 사망원인인 경우)이 72%였다.”며 “폐암은 전립선암, 골·연부암, 두경부암에 이어 가장 많은 치료실적을 보유한 암종.”라고 설명했다.
중입자 가속기는 아직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 중국, 독일 등 일부 국가에만 가속기가 존재하며 국내의 경우 2022년까지 세브란스 병원이 도입할 계획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중입자 치료를 받으려면 현재는 중입자 가속기를 보유한 국가의 전문 병원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를 이용해야 한
더 이상 흡연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폐암. 현재까지 난치병으로서 수많은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폐암을 정복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