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야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면서 인사 문제와 관련해 유감을 표한 적은 있지만, 국민을 상대로 공식 사과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해외 동포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것도 충격적이거니와 그 사람을 박 대통령이 제일 먼저 발탁했다는 점,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 진흙탕 공방이 벌어지는 상황이 결코 간단치 않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과와 사의 표명, 그리고 이어진 허태열 비서실장의 사과로도 충분치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통령의 사과 수위는 예상보다 훨씬 셌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
- "지난주에 첫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로 어떠한 사유와 진술에 관계없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사실 관계가 밝혀지도록 할 것입니다. (중략)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모두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했으니 이제 모든 상황은 끝난 것일까요?
대통령까지 사과한 마당에 더는 이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공박하는 것은 그다지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물론 인사 시스템이나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은 앞으로도 계속 다루고 감시해야 할 사안이지만, 누가 더 책임져야 하네 마네하는 문제는 일단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진실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황당하면서도 부끄러운 사건은 비로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밝혀야 할 점은 청와대가 윤창중 전 대변인의 귀국을 종용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윤 씨의기자회견을 잠깐 들어볼까요?
▶ 인터뷰 : 윤창중 / 전 청와대 대변인
- "(이남기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시킬 수 없다며 귀국을 종용받았다"
자신은 떳떳하니 미국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이남기 홍보수석이 귀국을 종용했고 주미대사관이 예약까지 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남기 수석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주미 대사관이 비행기 예약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도 발견됐습니다.
일단 윤 씨의 말이 더 사실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 누가 윤 씨의 귀국을 종용했을까?
이남기 홍보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나아가 허태열 비서실장의 이름까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청와대가 윤 씨의 귀국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사태는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태를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살 수 있고, 또 미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범죄 혐의자를 청와대가 도피시킨 만큼 국격도 심각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도대체 한국과 청와대를 뭐라 생각할까요?
두 번째 쟁점은 윤 씨의 말이 신빙성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윤 씨는 인턴 여성의 허리를 한차례 툭 쳤을 뿐 성추행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윤 씨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윤창중 / 전 청와대 대변인
- "허리를 툭 한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이렇게 말을 하고 나온 게 전부였다."
- (이 여성이 다음날 새벽 6시 자기 방에 왔을 때) 속옷 차림이었나? 알몸이었나?
속옷 차림이었다."
그러나 이 여성이 미국 경찰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한차례 허리를 툭 친 게 아니라 엉덩이를 잡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귀국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를 받았을 때도 엉덩이를 잡은 것으로 윤 씨가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속옷 차림이었다는 윤 씨의 주장과 달리 피해 여성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 보고서에는 윤 씨가 알몸 상태였다고 나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셈입니다.
윤 씨의 말과 정황이 엇갈리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윤 씨는 호텔 바에서 성추행이 발생한 당일 밤 10시쯤 호텔로 돌아와 잠을 자다 새벽 1시에 깼다가 다시 술을 마시고 잤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를 보면, 윤 씨는 여성과 헤어진 밤 10시가 아닌 밤 12시가 돼서야 묵는 호텔로 돌아와 청와대 직원들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새벽 3시쯤 다시 나갔고, 2시간 뒤 다시 만취한 상태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윤 씨는 새벽 6시 2차 성추행이 발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윤 씨는 잠을 자는데 노크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었더니 그 인턴 여성이 있어 황급히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은 새벽 6시 전화로 서류를 가져다 달라고 해 밤에 올라갔더니 윤 씨가 알몸 차림으로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펴봐야 할 대목입니다.
만일 윤 씨가 새벽 6시 2차 성추행 전까지 밤새도록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다는 게 사실일까요?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어떻게 대변인이 밤새 술을 먹고 만취할 수 있었을까요?
이게 사실이라면, 윤 씨는 정말 심각한 공직기강 해이를 보인 셈입니다.
청와대 말처럼, 성추행 여부를 떠나 술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도 경질감입니다.
밝혀야 할 쟁점이 많은데다 수사권이 미국에 있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윤 씨는 청와대가 억울한 자신을 희생양 삼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는 윤 씨를 파렴치범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진위 공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은 더 깎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둘러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