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NLL 포기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논란에서 이제는 대화록이 지난 대선 전에 불법 유출됐느냐 아니냐로 불씨가 옮아붙는 형국입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주중 대사가 한 발언이라며 녹취록을 공개했습니다.
▶ 박범계 의원 공개 녹음파일
- "NLL 대화록, 대화록 있잖아요? 참, 자료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 "
NLL 대화록이라는 것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의미합니다.
이번에 국정원은 대화록과 발췌본을 공개하면서 공공기록물인 2급 기밀문서를 일반 문서로 전환해 합법적으로 공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난 대선 당시에는 이 대화록이 아무나 볼 수 없는 기밀문서였다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기밀문서를 구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또 이를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깐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당시 NLL 대화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근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권영세 주중 대사는 이 녹취록과 녹음파일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 권영세 주중 대사
- "어디서 작성했는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와 내통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화록을 본 적이 없으며, 처음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폭로한 정문헌 의원을 통해 대화록이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내용은 알고 있었다."
새누리당은 녹음 파일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민주당이 이를 권영세 대사의 육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대화를 불법 도청하고 녹음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며, 그렇게 불법 확보한 녹취물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인터뷰 : 권성동 / 새누리당 의원
-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누가 녹음했는지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누가 녹음했는지…."
이에 대해 박범계 의원은 당시 권영세 실장 지인과 함께 대화를 나눈 녹음파일이 있으며, 제보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은 민감한 내용의 녹취록이 더 있으며 추가 공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메가톤급 후폭풍인데, 또 큰 의혹이 터졌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이 어제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 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당시 대화록을 다 입수해 읽어봤고, 그 내용을 선거유세현장에서 직접 읽었다는 겁니다.
인터넷 언론<뷰스앤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뷰스앤뉴스 보도)
-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당시 국정원장)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 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많은 사람 앞에서 울부짖듯 쭉 읽었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부산 유세현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과 관련한 내용을 얘기했습니다.
당시 발언 내용입니다.
▶ 김무성 /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2012년 12월18일)
-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한테 가서 마치 애들이 어른한테 잘 보이려고 자랑하듯이 미국을 제국주의·패권주의자라고 욕을 하고, 미국과 싸웠다고 자랑했습니다. 미군과의 합동작전인 작전계획 5029를 없애버리겠다고 자랑했습니다."
민주당은 당시 김 의원의 발언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거의 일치한다며, 김 의원이 대선 전에 대화록을 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의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대화록을 본 적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 김무성 / 새누리당 의원(보도자료 해명)
- "대선 당시 정문헌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내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해, 본인이 [구두로 어떻게 된 사안이냐] 물었고, 정문헌 의원은 구두로 설명해주었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주평통 행사 등에서 NLL 문제와 관련해 발언하신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문건이 있었다. 이 문건을 가지고 부산 유세에서 연설에 활용한 것이다."
이제 정치권 공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에 이어 기밀문서인 대화록의 사전 유출 논란까지 확산했습니다.
어느 한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야당에 권고한다. 전직 대통령의 NLL 등 발언 중에 국기를 흔들고 국민 자존심 심하게 망가뜨린 내용이 다수 있다. 절차 문제에 대한 폭로로 본질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
- "한마디로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국정원을 그리고 대통령 발언록을 휘어잡고 흔들어대면서 이용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여야가 어렵사리 국정조사에 합의했지만, 다시 한번 정국은 심하게 요동칠 것 같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북한도 이 난세에 가세했습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최고 존엄을 우롱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 북한 조평통 대변인 담화
- "이번 담화록공개가 청와대의 현 당국자의 직접적인 승인이 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사실 종북을 내들고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당국자치고 지금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대 당국자치고 평양을 방문했던 그 누구도 종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혹시 지난 2002년 5월 당시 미래연합창당을 준비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평양에 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일까요?
그래서 그때 오갔던 대화록도 북한이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북한이 만일 그때 대화록마저 공개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대화록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설령 있다 해도 북한이 공개한 내용이 왜곡되지 않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대화인지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북한이 이를 공개한다면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반역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고,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연산군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정치권이 멀리 보지 못하고, 앞다퉈 깊은 수렁으로 스스로 빠져드는 건 아닐지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