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놓고 보면 지금 여권은 더는 바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왠지 새누리당에서는 웃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입니다.
어제는 모처럼 계파를 떠나 큰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이재오 의원의 출판기념회 자리에서입니다.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의 저서 '이제는 개헌이다' 출판기념회 자리는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합니다.
황우여 대표와 서청원 의원을 비롯해 정몽준, 김무성 의원 등이 참석했고, 야권에서도 문재인, 한명숙, 심상정 의원 등이 참석할 정도였습니다.
이재오 의원과 서청원 의원은 중앙대 동문이지만, 2007년 경선에서 한 사람은 이명박 당시 후보를, 또 한 사람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서청원 의원의 말과 이재오 의원의 말을 차례로 들어보죠.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
- "2007년도 당내 경선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살렸으면 좋겠다고 한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밀었고, 나는 신뢰하는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을 돕겠다고 하면서 갈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지낸 선후배의 마음속까지는 못 바꾼다."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
- "정치하면서 노선이 다를 수 있는데 이명박, 박근혜 두 분 다 대통령을 했으니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 정치 대선배, 대학 선배에 나이도 많은 서 선배와 15년 전으로 돌아가서 의견을 잘 맞춰 당과 나라를 살리는 일에 마음이 합치됐다."
그러나 역시 개헌 문제를 놓고는 두 사람 모두 확연히 다른 시각을 드러냈고, 분위기는 멈칫했습니다.
들어볼까요?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
- "중진회의에서도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내년부터라도 애기하자'라고 했는데 이게 친이친박이 싸우는 것처럼 됐다. "(그거까진 아니고) 올해는 경제를 살리고 차근차근 개헌하자"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
-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과 사이가 좋으냐, 안 좋으냐로 정치가 좌우되는 게 이 나라 시스템인데 그래서는이 나라가 안 된다. 국민소득이 3만, 4만 달러를 넘으려면 이제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눠야 한다"
뼈 있는 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분위기를 망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웃음소리는 더 컸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날카로운 대립을 감추고자 다들 어쩌면 더 크게 웃었을지 모릅니다.
당권을 노리는 김무성 의원의 농담도 분위기를 돋우는데 한몫했습니다.
김무성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의원
-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재오 의원이 그간 잘 안 보여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와 보니 '아직 살아있네 살아있어∼"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실세로 군림했던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정부에서 힘이 빠지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자리만큼 옛날의 그 권세를 다시 찾은 듯 보였으니, 김무성 의원이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웃음과 농담이 오갔지만, 사실 지금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폭풍전야입니다.
이른바 당권을 쥔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어제 열린 최고중진회의는 그 갈등을 전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3월2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정몽준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몽준 / 새누리당 의원
-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청와대 눈치 보거나 집안 싸움하는 것으로 비치면 국민 통합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성공 위해 새누리당 다른 모습 보여야 한다. "
정 의원의 말은 당권을 쥔 핵심 친박계를 겨냥한 것이 분명합니다.
서울시장 경선에서 이른바 '박심'을 이용해 김황식 전 총리를 밀지 말라는 겁니다.
친박계 인사들이 연일 당협위원장들과 접촉하고, 전직 친박계 의원이 김 전 총리를 위한 바닥 조직을 다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특히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이 지역 조직위원장을 잇달아 친박계 인사를 앉히는 것에 대해 비주류가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입니다.
비주류인 김성태 의원은 비공개로 회의 전환하자는 황우여 대표의 말까지 꺾어가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서울시당 얘기 아닌가. 비공개로 하자."
▶ 인터뷰 : 김성태 / 새누리당 대표
- "허용해달라 한 번만. 특히 노원을, 동작 구로을 조직위원장 임명 보고 참담한 심정이다. 지역 아무 연고 활동 없는 인사들 재력 이유와 특정인 사적 인맥으로 공천한다면, 천막 당 사 이전의 밀실 공천 줄 서기 공천과 뭐가 다르냐."
주류 친박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정몽준 의원과 김무성 의원 등 비당권파에게는 상당한 위협입니다.
친박계는 아무래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이 경선에서 이기고, 서울시장까지 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급격히 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 서청원 의원 대신 역시 차기 대선을 꿈꾸는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급격한 레임덕을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몽준 의원 대신 김황식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나가고, 김무성 의원 대신 서청원 의원이나 최경환 원내대표가 당대표가 되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와 현실적 여건을 보면 정몽준 의원이 김황식 전 총리보다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어서 친박 주류계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청원 의원 역시 김무성 의원을 꺾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선과 전당대회가 불러올 여권 균열과 또 이후 지는 쪽이 입게 될 치명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한 주류와 비주류의 기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내분은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삐걱거리고 시끄러워도 당 지지율은 견고하고, 민주당은 좀처럼 한자릿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이한 일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