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제1야당 민주당이라는 호랑이를 잡는 첫 유혹은 다름 아닌 식사, 밥이었습니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하는데 딱히 거절할 사람은 많지 않겠죠.
안철수 의원은 어제 민주당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오찬을 했습니다.
평소 친분 있는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식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선수를 기준으로 민주당 의원들과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어제 오찬은 안 위원장의 깜짝 제안으로 성사됐습니다.
참석자는 5선의 문희상 이미경 이석현 의원과 4선의 박병석 김성곤 김영환 신기남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민주당의 최다선 의원들을 왜 만나자고 했을까요?
안 위원장 측 관계자는 "지난주 민주당 보건복지위 소속 일부 의원과 식사를 하며 기초연금 관련 의견을 구한 데 이어 어제 중진의원들에게서도 기초연금 해법에 대해 고견을 들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안 의원의 어제 식사 정치에서 두 가지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결국은 지켜지지 못한 공약입니다.
또 노후 생활과 민생에 직결된 정책이기도 합니다.
안 의원은 민생문제인 기초연금의 해법을 주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차별화를 보이고자 했을 수 있습니다.
중진 의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만들면서 겸손함과 함께 대선 주자로서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을 수 있습니다.
안 의원은 오찬 내내 "앞으로 잘 찾아뵙고 좋은 말씀을 듣겠다. 잘 이끌어 달라"며 몸을 낮췄다고 합니다.
이들뿐 아닙니다.
안철수 의원은 원외 고문들도 차례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정대철 고문에게도 전화가 갔다고 합니다.
▶ 인터뷰 : 정대철 / 민주당 상임고문(14일 MBN 시사마이크)
- "안철수 의원이 좀 전에 전화했어요(방송 나오기 전에) 급하게 오는데, 오랜만입니다. 언제 아침이나 한 번 먹읍시다, 제가 그랬습니다. 만나면 너무 큰 기대하지 마시라고 얘기하겠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현실정치로 내려오면서 달라진 걸까요?
그 변화의 계기는 아마도 지난 2월13일 권노갑 민주당 고문과의 만남일지도 모릅니다.
정대철 고문의 말처럼 권노갑 고문을 비롯한 민주당의 원로고문들은 '국민동행'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통합을 물밑에서 추진했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2월13일 저녁 권노갑 고문과 안철수 의원이 만났고, 신당 창당에 열을 올리던 안 위원은 창당을 접고, 민주당 통합을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권 고문은 이 자리에서 독자 신당이 만들어지면, 여당만 유리해진다고 했고, 안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와야 대권의 기회가 있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도 레이건도 모두 공화당에 들어가 대통령이 됐다는 예까지 들면서 안 의원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안 의원은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3월2일 안 의원은 전격 통합을 발표하게 됩니다.
아이젠하워와 레이건의 사례가 안 의원을 움직인 걸까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와 영화배우로 유명했던 레이건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비정치인이었습니다.
안철수 의원과 비슷하죠.
그들이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닌 제3의 독자신당을 만들었다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존 정당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당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안 의원은 이 대목에서 마음이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주변에서 숱하게 듣던 얘기였지만, 민주당의 핵심 원로인 권노갑 고문으로 직접 들은 것은 차원이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민주당에 들어가도 권노갑 고문과 같은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문재인 의원과 친노진영과도 한 번 해볼 만 하다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고 결심한 이상, 안 의원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고, 또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만 하겠죠.
최근 안철수 의원을 만나 같이 식사를 했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안 의원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박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당 의원(17일 MBN 시사마이크 출연)
- "(과거 안철수 의원을 비판한)제 자신도 미안하잖아요. 한 식구가 되니. 그래서 잘해보자 그런 말씀을 드렸고, 안철수 위원장도 박지원 대표의 진심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씀하는데, 굉장히 많이 변했더라고요. 딱 잘라서 말하는 것 보고, 많이 변했다 이런 느낌도 받았어요.(과거에는 우유부단했는데...)"
민주당 내 여러 의원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며 대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안철수 의원.
그러나 그 앞에는 문재인 의원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문 의원은 언제쯤 만나 식사를 하게 될까요?
사실 어제 민주당 중진 의원 식사 자리에는 6선의 이해찬 의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의원 측은 다른 선약이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이 의원은 문재인과 마찬가지로 지난 일요일 신당 발기인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불편한 게 있었던 걸까요?
안 의원과 문 의원은 이제 같은 한배를 탔지만, 아직은 서먹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밥 한 끼 같이 먹는다고 해서 그 서먹함이 금방 가실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안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최선을 다해 도왔는데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언젠가는같이 밥을 먹게 될 겁니다.
정치란 그렇고 그런 것이고, 사람들의 시선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