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무공천은 안철수 대표의 소신이고 약속이자, 통합의 명분이었지만, 당원과 국민의 뜻은 달랐습니다.
당원 투표에서는 '공천해야 한다'는 견해가 57.14%로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 42.86%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론조사에서는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50.25%로,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49.75%)를 약간 앞섰습니다.
합산을 하면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이 53.44%,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가 46.56%로 나왔습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 무공천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질문 문항에 넣었지만, 기초무공천을 관철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당원과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며 기초무공천을 철회했습니다.
기초 무공천 철회는 안철수 대표의 용기있는 후퇴일까요? 아니면 현실정치의 높은 벽 앞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을까요?
안철수 대표가 여론과 당원조사를 수용한 것은 나름 기초무공천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당원과 국민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과 당원들이 무공천 입장을 지지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안 대표의 믿음은 현실과 달랐습니다.
현실과 다른 정치적 이상과 도전은 이제 멈춰야 하는 걸까요?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되레 잡아먹힐 위기에 놓인 사슴이었던 걸까요?
가만히 돌이켜보면, 안철수 대표가 현실 앞에서 정치적 도전을 멈춘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처음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했던 일,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의원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던 일,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통합한 일, 그리고 지금의 기초무공천 철회까지 아마도 안철수 대표의 머릿속에는 이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겁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2011년 9월6일)
-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여깁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당시 무소속 후보(2012년 11월23일)
- "국민 여러분.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 주십시오.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당시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3월3일)
- "설명에 앞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발기인 포함해 동지 여러분에게 미리 상의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사실 어제 제 결정은 동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위원 여러분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동지 여러분의 뜻이 없고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수 없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오늘)
- "무공천 철회는 국민과 당원 뜻 따르겠습니다."
안철수 대표에게는 이 모든 결정이 참으로 힘들고 고뇌에 찬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결국은 이렇게 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안 대표가 현실정치를 너무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 대표는 그 현실정치를 깨겠다고 했고, 그들은 안 대표가 현실정치와 결국 타협할 것이라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안철수 대표가 현실 앞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모양새입니다.
기초무공천 철회에 대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늘)
- "많은 국민이 기초공천 폐지의 부작용을 고려하고 정당정치의 책임성을 요구한 것으로 만시지탄, 사필귀정이다. 자신이 당원들 국민의 뜻과 다른 걸 절대 선인 양 아집을 부려온 안철수 대표는 되돌아보는 계기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안철수 대표가 비로소 정치인이 돼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치란 무릇 타협의 산물이고, 역사란 무릇 변증법적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발전한다면, 지금의 고통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밑천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안철수 대표의 앞날에 놓여 있는 '고통'이 얼마나 더 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돌파할 수 있을지도, 아니면 그 앞에서 좌절할지 그것 역시 지금은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는 안철수 대표에게 큰 시련이 될 수도 있고, 큰 용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안철수의 길은 뭘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