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풍자한 영화를 보면, 간혹 정치인과 정치권을 추악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묘사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은 크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십상시 모임'이나 '정윤회 박지만 암투설'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박관천 경정이 있지도 않은 얘기와 등장인물을 가공해 만들어낸 소설이라는겁니다.
그 뒤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은 왜 이런 허왕된 소설을 썼을까요?
검찰의 설명입니다.
▶ 인터뷰 : 유상범 / 서울중앙지검 3차장
- "박지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추단됩니다. "
하지만, 이것만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수 언론에서조차 정윤회 씨가 실세인가 아닌가 하는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꼬집을 정도입니다.
정윤회 씨 딸의 국가대표 선발 의혹, 문체부 국과장의 급작스런 교체, 그리고 기무사령관, 국세청장 등의 교체에 정말 정윤회 씨가 관여했는지 부분은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심지어 그 흔한 자택이나 사무실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애초부터 정윤회 씨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할 의지가 없었던 걸까요?
그저 문건 유출만 열심히 수사했던 걸까요?
야권은 검찰이 박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충실하게 따랐다며,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반응입니다.
▶ 인터뷰 : 우윤근 /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1월6일)
- "검찰은 자긍심과 자존심마저 버렸다. 정윤회 게이트는 국정개입 했는지 여부다. 문고리 3인방이 문체부 인사의 개입 여부. 박지만씨에 문건 넘겼는지 여부. 검찰의 압력 여부를 밝혀야 한다."
▶ 인터뷰 : 이완구 / 새누리당 원내대표(1월6일)
-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미진한 부분은 국회 논의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정치공세는 지양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윤회 씨는 오명을 벗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특검을 외치는 야당의 칼날은 더 집요해질 전망입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말대로 '찌라시 사건'으로 검찰 수사가 끝난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입니다.
윤두현 홍보수석의 논평입니다.
▶ 인터뷰 : 윤두현 / 청와대 홍보수석
- "몇 사람이 개인적으로 사심갖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 늦었지만 다행으로 보고, (문건) 보도 전에 사람들이 한번의 사실 확인 과정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데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윤 수석의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비서관은 올 초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고위 공직자와 박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을 감찰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허왕된 풍문을 갖고 공식 보고서를 만들고, 그것을 비서실장과 외부 박지만 회장에게 버젓이 전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청와대가 찌라시의 출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어떻게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엉터리일 수가 있으며, 또 그런 가짜 보고서를 버젓이 만들어 유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박관천, 조응천 두 사람의 개인 일탈을 넘어 청와대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홍보수석이 '다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적절할지 모릅니다.
청와대의 민망한 민낯이 드러났지만, 변화와 쇄신이 뒤따를지는 글쎄요, 두고봐야겠습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 있었던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단일화 과정도 그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안철수 의원을 도왔던 몇몇 인사들이 '안철수 왜?'라는 대담집을 내놨는데,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 내용을 잠깐 보겠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가 사퇴했을 때 처음에는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문재인 후보 선거 운동 일정에 맞춰 손잡고 다니며 ‘얼굴마담’ 같은 선거 운동만 해달라는 식이었다" (오창훈)
"소위 ‘광화문 대첩’이라고 불렸던 마지막 선거 유세가 이러한 열기를 완전히 망가뜨렸다…안철수가 연단에 오르려는 순간 펼쳐진 친노 중심의 폐쇄적인 선거 운동 풍경이 안철수에게는 상당히 충격이었을 것이다.")정연정)
"민주당과 함께 뭔가를 한다든지, 민주당과 같이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도 했다. 그때 받은 느낌상 안철수가 대선 당일 미국으로 떠난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강동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안철수를 겨냥해 ‘자기가 진짜 당대표인줄 착각한다’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강연재)
당시 '아름다운 단일화 양보'라는 미사어구가 붙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문재인 캠프 측의 오만과 독선이 판을 뒤흔들었고, 진정성 없는 안철수 캠프의 양보는 배신감과 소외감으로 가득했나봅니다.
국민을 속였던 것일까요?
안철수 의원은 이 대담집이 자신과 상의없이 이뤄진 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장은 이미 미국에 있는 안 의원에게 덮쳤습니다.
안 의원은 이제 소심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문재인 의원은 지금 치르고 있는 당권 선거에서 대선패배 책임론이 더 불거지며 치명타를 입을지 모릅니다.
이 비하인
이런 민낯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정치권을 혐오하게 만듭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