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자고로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라 했지만, 오늘날 우리의 정치권도 국민을 편안케하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연초부터 각종 화재가 끊이질 않고 있고, 어린이집 폭행사고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연말 정산으로 직장인들이 단단히 뿔이 났습니다.
취임 후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정국을 강타했던 정윤회 문건 파동과 K,Y 배후설 진흙탕 싸움도, 또 야권의 전당대회도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민생현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 2일부터 한 달간 임시국회가 열릴 예정이지만, 그 국회가 우리의 고단한 삶에 그다지 대안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왜 이렇게 정치권은 민생과 멀어지게 됐을까요?
지금 정치권은 13월의 분노로 뒤덮인 민심을 달래느라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장 세금을 토해내야 하는 직장인들은 분명히 증세라 하고 있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고 하지만, 흡연자들은 분명히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올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오늘)
- "정부는 2013년 말 근로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여야 공정한 세정이다 라고 말하면서 저소득층 부담 줄이고 고소득층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바꾸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 불만 초래한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 인터뷰 : 문희상 /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 "세계적인 흐름은 소득 불평등 해소하는 방향이다. 박 정부만 재벌 대기업 감세한다. 힘없는 월급쟁이 호주머니만 털려고 한다. 13월의 폭탄. 지난해 법인세 1조 5천억원이 줄고 소득세는 4조원가량 늘었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해 여야가 합의해서 245 대 6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저항이 일어날 줄 여야는 몰랐을까요?
몰랐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평소 정치권이 민생과 민심에 얼마나 무관심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연말 정산에 분노하는 사람은 '유리지갑'인 샐러리맨들과 남편의 2월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것이 걱정인 전업주부들입니다.
어린이집 폭행 사고를 놓고서는 30~40대 엄마들과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잔뜩 뿔이 났습니다.
이런 민심을 어떻게 누가 달래줄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 앞서 장관들과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티타임은 취임 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연말정산과 관련해 가벼운 환담을 나눴습니다.
티타임과 국무회의 발언 들어보겠습니다.
▶ 박근혜 / 대통령(티타임)
- "(국민의) 이해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 오늘 (기자회견) 잘 하셨어요”
▶ 박근혜 / 대통령 (국무회의)
- "그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 조성을 위해 관련 대책과 법률을 재정비해서 시행해 왔고, 매년 9조 원 수준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서 참으로 개탄스럽다."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국민의 생활에서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민과 소통의 부족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것 역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민심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제 와 정치권은 뒤늦게 민생의 목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박 대통령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박 대통령의 티타임 조금 더 들어보죠
▲ 박근혜 대통령 : (국무위원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차는 드셨어요? 티타임이니까 차를 마시면서…( 웃음 )
- 정종섭 행자부 장관 : 대통령님께서 먼저 차를 드셔야 되는데…
▲ 박 대통령 : 어디 있어요? ( 웃음 )
- 김희정 여성부 장관 : 이 자리에 담배 끊으신 분이 두 분 계십니다.
▲ 박 대통령 : 그럼 다른 거 뭐 드시고, 주전부리를 자꾸 하시게 되나요?
- 문형표 장관 : 네, 자꾸 너트 같은 견과류를 자꾸 먹게 됩니다.
가볍게 환담을 나누면 진행되는 티타임은 박 대통령이 적폐와 금단현상을 언급하자 무거워졌다고 합니다.
▲ 박 대통령 : 잘못된 것도 오래 하다보면 편하니까, 나쁜 거라도 으레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냐 하고 빠져드는데, 그러다가는 사회가 썩는다. 그러면 개혁을 하려해도 저항도 나오게 되고, 여태까지 편했던 것을 왜 귀찮게 하느냐, 난리가 나는 그런 게 일종의 금단현상이지요.
이 말을 들은 장관들의 속내가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장관들과 편한 티타임을 하고, 그 장관들로부터 민생과 생활밀착형 이슈에 대해 가감 없이 듣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국회를 떠나 국민 삶으로 들어가 보고 느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늘 어떤 지적이나 비판이 나온 뒤에야 마지못해 뒤따르는 후속형 행보라는데 있습니다.
민생이 고달파지고, 민심이 들끓기 전에 우리 정치인들이 알아서 그런 행보를 보이고 대책을 내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치인들의 이런 뒷북 행보
그것을 당장 끊자고 하면 아마도 정치인들은 금단현상을 보일 겁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금단 현상이 일어나고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삼일마다 새롭게 결심을 되새김하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런 의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