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TF 사무실은 야당 교문위원들이 찾아간 걸 가지고 감금했다고 하더군요.” (문재인 대표)
“…(총리·비서실장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세요.“(박근혜 대통령)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최대 관심사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박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4분 정도를 할애해 국정화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했다. 4분은 총 연설시간 41분의 10%에 불과했지만 국정화와 관련한 16 문장이 흘러가는 동안 총 11번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 있었던 박수 55번의 20%였다. 거의 한 문장에 한 번 꼴로 박수가 터진 것이다.
물론 박수는 여당 의원들로부터만 나온 것이고, 야당 의원들은 굳은 얼굴로 연설을 듣고만 있었다.
◆ 야당지도부 기다린 박대통령
이날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시작 전부터 불편함이 배어 나왔다.
오전 9시 40분 국회에 도착한 박 대통령을 처음 맞은 것은 ‘대통령님, 國史보다 國事입니다‘, ‘국정화 철회’ 란 푯말을 든 정의당 의원들이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실에 딸린 접견실에서 이동해 타타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정갑윤·이셕현 국회부의장,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 등 국회측 인사와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중앙선관위원장, 그리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부·헌법기관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청와대 수석과 국회 간부들이 배석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티타임은 15분여 동안 진행됐는데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기다리는 이례적인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날 국정화를 놓고 정부·여당과 대립 중인 야당이 시정연설 참석 여부를 놓고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대표가 5분 가량 늦은 것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정의화 의장이 문 대표에게 권유했다.
“문 대표 요즘 (국정화 문제로) 심기가 불편하시죠. 대통령님 오셨는데 좋은 말 한마디 하시지요.”
발언 기회를 잡은 문 대표는 작심한 듯 따져 물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TF 사무실을 운영하더군요. 그런데 야당 교문위원들이 거길 찾아간 것을 가지고 감금을 했다고 하더군요. 적반하장아닙니까. 의원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
일순간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고 참석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듣고 있던 박 대통령은 잠시 시간을 보낸 뒤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병기 비서실장을 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세요.“
◆ 반대 문구 논란에 15분 늦은 시정연설
이날 시정연설은 예정된 10시보다 15분 늦게 열렸다. 야당 의원들이 ‘민생우선’ ‘국정교과서 반대’ 문구가 적힌 용지를 박 대통령이 설 연단에서 보이도록 각자 자리에 비치된 컴퓨터 모니터 뒷쪽에 붙였고, 이를 만류하는 정의화 의장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 10여명은 본회의장에 국사 교과서를 들고와서 읽기도 했다. 정의화 의장은 지적했다.
“국회 품격을 생각하길 바라고 대통령이 와서 연설하는 동안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며 “앞에 있는 것들을 제거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새누리당의 김성태 의원도 “국회의장 말도 안 들을거면 여기 왜 들어 왔어”라고 야당을 비난했다.
하지만 야당이 끝내 물러서지 않으면서 문구가 붙여진 채로 시정연설이 이뤄졌다.
한차례 소동이 지난 후 박 대통령은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듯 진회색 정장에 진회색 티를 착용한 채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여야 의원모두 일어나 박 대통령을 맞이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박수로 환영의 뜻을 보인 반면 야당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국정화 교과서에 대한 반대를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 국정화 부분서 목소리·눈빛 강해져
전반적으로 차분한 어조로 시정연설을 이어가던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촉구하는 10시 52분경 부터다.
앞서 창조경제와 청년일자리 마련 등 시급한 현안 이슈에 대해 법안의 시급한 처리를 요청하면서도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약한 미소를 잃지 않고 연설을 이어갔지만 역사교과서로 주제가 바뀜과 동시에 그의 표정은 급속히 굳어갔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 언급했던 주제들과 달리 단어 단위로 또박또박 끊어서 연설을 이어갔다. 다른 주제 연설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았던 그의 어조는 집필되지 않은 교과서에 대한 비방을 멈추라고 요청하는 부분에서 가장 높아졌다.
여당쪽 의석을 쳐다보며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라고 말한 뒤 야당쪽 의석을 보고는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 야당의원은 시정 연설 후 본회의장을 나서면서 박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에게 이른바 레이저(불만을 나타내는 강렬한 눈빛)를 보냈다면서 “심하더라”고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 교과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끝난 후 다시 옅은 미소를 띠었다. 시정연설 끝나고 박 대통령이 퇴장하자 여당 의원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로 시정연설에 대한 동의 뜻을 내비쳤지만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대통령과 악수 두번하기도...“명연설입니다” 극찬한 비박계 의원
연설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은 본회의장 중앙 통로에 앉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연단 쪽에서부터 일일이 악수하며 본회의장을 나갔다. 김무성 대표는 본회의장 출입구에서 박 대통령을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당 의원은 입장하는 박 대통령과 악수를 한 번 한 뒤 다시 재빨리 줄을 서서 퇴장하는 박 대통령과 다시한번 악수를 하기도 했다. 또 한 비박계로 꼽히는 한 의원은 박 대통령과 악수하며 “명연설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참관인들의 분위기는 박 대통령의 연설에 박수로 회답하는지에 따라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뚜렷이 갈렸다. 일부 참관인단은 굳은 표정으로 연설을 지켜본 반면 다른 집
한편 당초 청와대가 오늘 시정연설 참관인으로 일부 보수단체들을 초청했다고 알려지면서 보수·진보 시민단체가 시정연설 전후로 충돌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참관이 이뤄졌다.
[이상훈 기자 / 김종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