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공공재정 부정청구 등 방지법’이 국회에서 5개월째 잠자고 있다. 정작 국민의 혈세를 앞장 서서 지켜야 할 국회가 세금 누수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재정 부정청구 방지법은 공공기관 예산 부정청구로 얻은 이익을 전액 환수하고,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부정청구는 5배 이내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법안은 또 부정청구 횟수가 2회 이상이고 금액이 3000만원을 넘는 경우 부정청구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18일 매일경제와 만나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2~3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아낄 수 있는데 아직도 통과가 안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 10월 27일이 돼서야 상정됐다. 이후 이달 17일에야 가까스로 법안심사소위에서 법안 심사가 개시됐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한 뒤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성보 권익위원장은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한국 사회는 복지예산 확대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각종 정부 지원금과 복지보조금 등에 대한 부정 청구가 빈발해 재정누수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국립회계원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복지지출 대비 부정 수급 비율은 2~5%다. 우리의 경우 올해 전체 복지 예산이 116조원인데, 권익위는 연구·개발(R&D) 예산 등 보조금을 합치면 정부의 민간부문 지출액은 195조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 중 2%만 부정수급이라고 가정해도 한해 무려 4조원 가까운 재정이 누수되는 셈이다.
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재정누수는 중앙재정과 지방재정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권익위가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이첩한 부패신고 사건의 45.9%가 보조금 관련 사건이었고, 환수 대상액만 539억 8000만원에 달한다. 장애인·청년 허위 채용 후 보조금 청구, 대학 연구보조금을 받기 위해 가족을 보조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하는 등 사례 또한 다양하다.
문제는 이같은 공공재정 누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 환수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회 정무위는 검토보고서를 통해 “공공재정 부정청구 방지법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부정청구에 대한 환수 체계를 마련해 공공재정 누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입법 취지를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정무위 관계자들은 법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봐야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무위 관계자는 “법안이 6월에 제출됐는데, 6월 이후에는 국정감사 관련 회의를 열기 때문에 법안 상정이 늦어진 것”이라며 “여야의 반대가 있어서 논의가 안 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공재정 부정청구 방지법과 취지가 같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수개월째 계류돼 있다. 현행 보조금관리법은 공공재정 부정 수급분에 대해 해당 금액만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부정수급 방지 효과가 미흡하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보조금관리법 개정안은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보조금 총액의 5배 이내 범위에서 부가금을 부과·징수 하도록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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