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YS와 JP <매경DB> |
YS와 JP의 대표적 합작품은 ‘3당 합당’이다. 1988년 총선에서 본인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밀려나자 YS는 1990년 여당인 민주자유당과 JP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을 단행했다. YS는 이를 토대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1992년 그토록 꿈꾸던 대권을 손에 쥐게 된다. YS는 3당 합당을 한 이유에 대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92년 문민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었던 YS와 JP가 정치 인생 시작부터 한 배를 탔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의 JP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군사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주요 인사로 활약했고, YS는 DJ와 함께 군사 정권을 반대하는 야권 인물로 활동했었다.
JP는 최근 회고록을 통해 “양김(YS·DJ)은 박정희 대통령에 맞서 일관되게 투쟁했고, 전두환 정권을 향해 줄기차게 민주화 투쟁을 벌여왔다”며 “그러나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근대화 시대를 개척했던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JP는 “YS·DJ와 나의 길은 권력 집념이라는 측면에서도 달랐다”며 “두 사람은 자신이 집권해야만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아집에 사로 잡혔었다”고 했다.
YS 정권 창출에 기여한 JP는 이후 여당인 민자당 대표가 됐지만, YS와의 불화로 1995년 자유민주연합이라는 독자 정당을 창당하며 결별을 선언했다. 2003년 DJ가 퇴임하고 2004년 JP가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3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YS와 JP는 9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박태준 전 국무총리(TJ)와 YS의 관계는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악연에 가까웠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TJ를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로 앉히는 순간부터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3당 합당’이 쐐기를 박았다. 노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위해 YS와 손을 잡자 TJ는 “전차에 머리를 받힌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YS 정권 초기인 1993년 TJ는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일본 망명길에 오른 바 있다. YS와 TJ의 악연은 문민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는데, 정치권에서는 TJ가 1992년 당시 YS 대선캠프 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해 관계가 틀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YS는 생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도 껄끄러운 관계였다. YS 정권 초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 전 대표는 1997년 대선 정국 당시 YS에게 신한국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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