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의 심야 합의가 반나절도 못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내몰렸다.
여야 원내대표는 2일 새벽 1시30분께 관광진흥법과 대리점거래공정화법(남양유업법)을 빅딜하는 등 5개 쟁점법안 처리에 합의하고, 오후에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이날 아침부터 야당 내부에서 잇따라 강력한 반발이 제기됐다. 당 지도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셈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시간에 쫓긴 졸속 합의가 부른 ‘예견된 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소속인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5개 법안은 각 상임위원회에서 아직 심사 중인 상태이고, 법사위에 상정되려면 협의 이후 5일간 숙려기간이 필요하다”며 “9일에는 처리할 수 있지만 오늘 하는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며 수용 불가를 선언했다. 비준동의안을 제외한 일반 법안은 본회의 상정에 앞서 반드시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야당의 강경파 의원들도 반발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정무위 간사)은 “여당이 대리점법(남양유업법) 하나를 가지고 상임위와 원내대표간 협상에서 후안무치한 이중플레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자기 당 지도부가 남양유업법을 관광진흥법이 아닌 다른 법과 연계했어야 한다는 뒤늦은 ‘힐난’인 셈이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문에 수정 내용까지 명시한 관광진흥법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이날 오후까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당 지도부는 합의 전권을 위임받은 반면 야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게릴라’식 주장에 속수무책이었다.
강경파들이 “의원총회 추인이 먼저”라며 상임위 개최조차 거부하는 웃지못할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부랴부랴 이상민 위원장 등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새누리당은 황당하다는 반응 속에 한때 단독처리 카드를 꺼내 야당을 압박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아무리 중심이 없는 정당이지만 자기들이 원내지도부를 뽑았으면 결정에 따라줘야 한다”며 “우리가 합의서를 들고 야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동의서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에 나서면서 이날 밤 여야가 본회의를 열어 내년 예산안 처리시한을 지킬 가능성은 열어뒀다. 정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5개 법안은 별도로 8일에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은 제안을 수용했으나 여당은 “야당을 신뢰할 수 없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야당이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번복하면서 정작 국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해 예
최대 쟁점이던 누리과정 지원 예산은 전날까지 새누리당이 600억원, 새정치민주연합이 5000억원을 요구하며 맞섰다. 결국 새누리당은 누리과정이 아닌 학교 시설비 명목으로 3000억원을 지방교육청에 우회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야당에 최후통첩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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