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휘틀리 영국 에식스대학 교수 |
이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후 ‘인구론(인문계 대학생의 90%는 논다)’이나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모두 인문계 출신들은 취업 시장에서 찬밥이란 자조가 담긴 넋두리다.
잘나가는 이공계, 갈곳없는 인문계가 대비되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제조업 부상과 IT 스타트업의 급부상으로 이른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지원비용은 높은데 당장 수확은 없어보이는 인문학에 대한 투자를 줄여서 학생들의 STEM 성적이나 올려야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 유명 저널리스트는 파리드 자카리아는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를 통해 과도하게 STEM 교육만 강조하면 인문학이 주는 창의성이 말살돼 오히려 미국만의 강점을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역시 STEM에 밀리는 인문학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글이다.
그러면 과연 기업은 더 많은 이공계, 공대 출신 인재가 필요할까. 인문학은 시장에서의 몸값이 낮다는 이유로 축소되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매일경제 ‘더 비즈 타임스’는 폴 휘틀리(Paul Whiteley) 에섹스대 교수와 IT솔루션 제공업체 PTC의 존 스튜어트(John Stuart) 수석부사장에게 STEM 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전망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물었다.
휘틀리 교수는 여러 연구를 통해 STEM 교육에 대한 투자가 국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특정 과목이나 학문을 육성하기 보다는 폭넓은 학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스튜어트 수석부사장은 미국 내 정부, 민간 기업, 교육 전문가 등 30명으로 구성된 ‘STEM 혁신 태스크포스’의 회원이자 STEM 예찬론자다. 두 사람간의 논쟁을 소개한다.
-이른바 STEM 이라고 하는 수학, 과학 교육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폴 휘틀리: STEM은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IT 부문에서도 STEM을 전공한 전문 테크니션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 제조업이나 IT 산업의 붐을 생각해보면 수학이나 과학 교육에 돈과 인재가 몰리는 게 이상하진 않다. 수학과 추론 능력은 IT 산업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제조업이 이제 과거와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지식 집약적 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회사나 테크놀로지 회사로 변신하고 있는 지금 이공계 전공에 대해 심도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그렇다면 STEM의 필요성은 계속 강조될 것이라 보는가.
▶휘틀리: 많은 나라에서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더 그렇다. 경제 성장은 언제나 새로운 혁신에서 태동하고 이건 기계적인 STEM에 대한 강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향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금융이나 마케팅과 같은 분야는 STEM과 큰 상관이 없다.
▶스튜어트:제조업이 STEM 교육에 핵심적이지만 기존 제조업의 부침과 상관없이 STEM의 필요성은 계속될 것이다. 혹자는 STEM보다는 인문학이 혁신과 창의적 사고에 더 기여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공계 교육은 혁신과 기업가적 정신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많은 신제품은 하드웨어 차원을 벗어난 소프트웨어와 어플리케이션들이다. 만약 학생들이 이공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그리고 컴퓨터 과학의 컨셉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면 이런 제품을 다루는 데 큰 핸디캡이다. CAD와 CNC 같은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지식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어도 그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할 기술적 토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건 백일몽으로만 그치기 마련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선 인문사회계 학생들도 일부는 취업을 위해 컴퓨터 코딩과 같은 이공계 수업을 듣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휘틀리=학생들이 자기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이공계 수업을 수강하는 것은 말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린 학생들이 그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닌 그들이 관심있어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산업 전망에 따라 학생들이 향후 전공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정부가 그에 맞춰서 교육에 투입될 예산을 배정하는 것 모두가 결국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스튜어트=STEM 비전공자들 역시 만일 IT 부문에서 일하고 싶다면 자신의 전공을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 간단한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거나 제조하는 데도 센서나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해당 분야에 취직하고 싶다면 그 기초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공계 교육에 더 집중해야 하나.
▶폴 휘틀리=이공계 교육이라고 해서 다른 전공보다 경제 성장을 더 촉진하지는 않는다. 이공계 교육이 경제 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가지긴 하지만 그건 ‘이공계’라서가 아니라 ‘교육’이라서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이미 ‘인적자본 이론’에서 증명된 자명한 얘기다.
특히 서비스나 문화 산업은 이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 STEM으론 이러한 산업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사람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스킬, 팀에서 일하는 능력, 컨셉과 언어 추론 능력, 업무 수행에서 사고에 대한 추론, 독창성과 상상력은 서비스 산업과 문화 산업이 요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이공계 공부가 아니라 다른 전공에서 길러진다.
이제 물질적인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으론 성장의 한계가 올 수 있는 영국 같은 선진국에선 창의적인 분야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도 광범위하고 영향력이 있는 STEM 찬성론자의 로비가 창의성을 돋우는 교육 정책을 막고 있다.
▶스튜어트=이공계 교육은 경제 성장 측면에서나 일자리 제공 측면에서 필수적이다. 지금 미국에서 이공계 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른 학문 전공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실업률을 경험한다. 거기다가 임금도 더 많이 받게 된다. 사물인터넷을 포함해 급속하게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이공계 전공자들이 우대받을 것이다.
요즘 어느 나라나 질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관심사일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이공계 교육을 활성화하면 청년들의 구직난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민간 회사들이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 PTC의 경우엔 퍼스트로봇(FIRST Robot) 같은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유아기 때부터 STEM 교육에 흥미를 얻게 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피사·PISA) 점수는 낮은데 혁신 지수가 높다는 이유로 STEM 교육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튜어트=교실에서 배우는 수학 과학 교육은 숙련도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배움이 절반 이상은 교실 바깥에서 얻어지는데 PISA 성적은 교실에서 얻는 지식만을 측정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계가 있다. 진정한 STEM 인재를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학생들이 진정으로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그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PTC가 방과후 수업으로 학생들이 처음 로봇을 만들어보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바로 그 문제 의식에서 나왔다.
-정부가 특별히 더 장려해야 할 학문 분야가 있을까.
▶휘틀리=학생 개개인의 투자 수익률만 따진다면 일단 의학이나 법학, 경제학이 괜찮은 타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물리학과 같은 순수 STEM 과목의 학위 소유자는 다른 학문에 비해 투자수익률이 낮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서 더 높은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실 승자가 될 만한 후보를 고르는 데 재능이 없다. 시장이 그걸 더 잘한다. 그러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응용 학문의 토대가 되는 기초 학문에 펀딩하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이다.
-인문계 출신의 장점도 있을텐데. 무엇인가.
▶스튜어트=물론 인문계 교육 역시 그 역할이 있다. 문학을 통해 사람
[윤원섭 기자 / 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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