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인내가 한계에 달한 것일까.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역대 최강의 대북제재법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전격 서명한 것은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전략적 인내’로 통칭되던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은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사실상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미국 대북 정책 기조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기존의 전략에서 벗어나 대북 압박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사실상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북정책이 강공모드로 변화한 것은 대북제재법안을 37일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한 데서도 감지된다. 지난달 12일 하원을 통과한 대북제재법안은 상원에서 오히려 강화돼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며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의사일정을 앞당겨 곧바로 하원 재심의를 마쳤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서명했다.
새로 발효된 대북제재법은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했다는 것과 북한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도 제재의 칼을 뽑았다는 점, 그리고 기존 대북제재의 범위와 수위를 확대한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우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자금원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으로 돈이 유입되는 통로를 차단하는 기존의 제재와 달리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단체도 제재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북한의 자금줄을 원천봉쇄하는 수단을 택했다. 또 무기거래, 마약거래, 위폐거래 등 기존의 불법거래 대상 외에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광물거래도 불법거래로 간주함으로써 북한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통로를 막았다. 특히 180일 이내에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점검토록 함으로써, 필요한 경우 북한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일시에 동결하는 조치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운영 실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무엇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책임 여부를 점검하도록 함으로써, 북한 최고 지도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점도 기존의 대북 인권제재와 다른 점이다.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거래 차단 등 기존 국제사회의 제재에 더해 북한의 사이버공격 등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될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번 대북제재법은 북한을 타깃으로 한 법이지만 중국도 넓은 범위의 제재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단체를 제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중국을 우회적으로 지목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독자적인 양자 대북제재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가 새 대북제재법에 포함된 것은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북제재 결의안에 중국의 협조가 미온적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 법은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단체를 제재하거나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했다. 중국과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북제재법으로 인해 북한과 거래하고 있는 중국의 원자재 관련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다각적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금융·무역 거래를 지속하며 북한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국사업단은 지난 2014년 북한의 대외교역액 76억 1000만 달러 중에서 대중국 교역액이 무려 90.1%에 달하는 68억 6000만 달러라고 집계했다. 특히 같은 해 KOTRA가 분석한 중국 해관(세관)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국 수출품목 가운데 석탄, 철광석, 아연, 흑연, 알루미늄 등 광물자원 수출액이 11억 5000만 달러로 전체의 40.3%에 달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제재법은 북한산 원자재를 값싸게 수입해 이익을 취하던 원자재 기업들로 하여금 대북한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
다만 다른 쪽에서는 대북교역에 종사하는 중국 동북3성 소재 기업들의 규모가 크지 않고 주로 중국내 내수에 주력하고 있는 점을 들어 대북제제법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북한과 거래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중국 기업들은 미국 측 세컨더리 보이콧의 그물을 빠져나갈 정도로 규모가 미미한 기업들”이라며 “이들의 기업활동은 동북3성 등 역내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고 제재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입장과 국제적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므로 훨씬 복잡한 증거수집 및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법안이 발효됐다고 해서 단기간에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기업을 제재하는 실적을 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의 대북 양자제재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마리야 자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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