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을 45일 앞둔 정치권이 공천 살생부라는 늪에 또 다시 빠져들고 있다. 여야 모두 과거와 달리 투명한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공언했지만 막후에선 볼썽사나운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위해 만든 원조 살생부와 달리 지금 정치권의 살생부는 죽일 사람의 이름만 담긴 ‘살부(殺簿)’다. 게다가 명부의 실재 여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정치적 노림수를 위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공천 살생부의 목적은 명료하다. 상대 계파나 경쟁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암수’이거나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다.
◆與 친박계 “김무성 자작극”...의총서 계파 신경전
정두언 의원의 폭로로 새누리당이 이른바 40인 살생부 논란에 휘말리자 김무성 대표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공천 내홍에 대한 불만으로 일주일간 공개 석상에서 침묵했던 김 대표는 지난 달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제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공천 관련 문건이나 살생부 얘기를 한 바 없다”면서 “(정 의원에게)최근 정가에 이런이런 말이 떠돈다고 말을 했을 따름”이라고 입을 뗐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전날 “3김 시대 음모정치의 곰팡이 냄새가 난다”며 반발하는 등 친박계가 격앙되자 일단 한발 빼는 모양새다.
살생부에 거론된 서청원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이유가 어떻든 당 대표가 거론되는 것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친박계는 이번 사태를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의 자작극으로 보고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계산된 행보라는 시각이다. 반면 비박계는 “친박계가 상향식 공천을 흔들기 위해 이번 일을 호재로 삼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비박계를 규합하려는 생각에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선 김태흠 이장우 노철래 의원 등 친박계가 총출동해 진실을 밝히라며 김 대표와 정 의원을 동시 압박했다. 이에 대해 김학용 의원은 “스피커폰을 통해서 정 의원과 통화했기 때문에 옆에 있던 박민식 김성태 의원도 같이 들었다”며 “(김 대표가)살생부 이야기를 안한 것이 확실하다”고 김 대표를 옹호했다. 반면 정 의원은 이날도 김 대표로부터 관련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자신에게 비슷한 말을 전달한 K모 교수에 따르면 친박계 핵심이 김 대표에게 구두로 낙천 명단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다만 정 의원은 “이런 일이 3월 중순에 벌어졌다면 우리 당은 완전히 망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빨리 수습해서 심기일전할 때”라고 확전을 피했다.
새누리당은 과거 공천 국면에서도 매번 살생부 논란에 휩싸였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초 친이계가 대거 포함된 명단이 돌았다. 결국 당 대표까지 지냈던 안상수 전 의원을 비롯해 이방호 진수희 안경률 박형준 등 친이계가 공천에서 우수수 탈락했다. 18대 총선때는 반대로 친박계를 표적으로 한 살생부가 떠돌았고, 서청원 김기춘 이강두 유기준 김태환 김재원 등 친박계가 고배를 마셨다. 친박계 좌장이던 박근혜 당시 의원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남겼고, 이들은 친박연대 또는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했다.
◆野 2차 컷오프 명단 떠돌아...김종인, 배수진치고 전권 요구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들이 최대 34명까지 물갈이가 가능한 ‘2차 컷오프’를 앞두고 술렁이고 있다.
더민주는 지난주 현역의원 10명(지역구 6·비례대표 4)을 컷오프(공천 원천 배제)한 데 이어 ‘경쟁력 심사’를 통한 2차 물갈이 작업을 앞두고 있다. 초재선 의원 중 현역평가 하위 30%, 3선 이상 의원 중 평가 하위 50%가 경쟁력 심사의 대상이 된다.지금까지 살아남은 현역의원은 초재선 71명, 3선 이상 중진 24명으로 산술적으로 최대 34명까지의 물갈이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들 34명이 모두 물갈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 다른 예비후보의 경쟁력을 평가해 물갈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34명에 포함된 의원이 누구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지속되면서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더민주는 이들 의원들에 대한 지역구 여론조사를 지난 주말까지 이미 완료했다. 당내에서는 이미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2차 컷오프 대상’의원이 누구인지 이미 윤곽이 드러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더민주 관계자는“여론조사에서 수도권 Y의원, E의원 등이 특히 저조한 결과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경쟁력이 있는 의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현역들의 동요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여론조사 공천’방침에 대한 반발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경쟁력심사 과정이 문재인 전 대표 시절 작성된 혁신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비대위와 공관위의 이같은 방침은 김상곤 혁신안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강기정 의원의 공천 배제도 공식 공천 일정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사천논란’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대표직 사퇴의 배수진까지 치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29일 당무위를 소집해 공천 관련 당헌·당규 수정을 추진한 것도 이와 같은 맥
[신헌철 기자 / 박승철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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