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공천 배제, 정치 인생 최대 위기…朴대통령과 질긴 '악연'
↑ 사진=연합뉴스 |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15일 4·13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이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으로 영입돼 입당한 뒤 현재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습니다.
제18대(2008년) 총선에서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에게 패배한 적은 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한 일은 없었다. 2010년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해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이 의원은 2007년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쟁했던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명박 캠프 좌장으로서 선거전을 진두지휘해 당시 이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쥔 데 이어 그 해 대선에서 승리,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내는 등 핵심 실세로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 때가 바로 박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 시기였지만, 양측의 악연은 37년 전인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의원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자격으로 경북 안동댐을 방문했다가 현장에 당시 새마을봉사단 총재였던 박 대통령의 방생기념탑이 크게 서 있는 반면에 안동댐 건설공사로 숨진 근로자들의 위령탑은 초라하게 건립돼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유신독재의 실체"라고 비판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구속됐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공개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옥살이 5번 중 3번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겪었다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정계에 입문해서도 박 대통령과 이 의원의 사이는 상극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제17대(2004년) 총선에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로서 이 의원의 당선을 적극 지원했으나 그해 8월 의원연찬회에서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의 당 운영을 비판하면서 "독재자의 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던 것.
그러자 박 대통령은 "당의 뿌리가 3공, 5공인줄 몰랐느냐. 총선에서는 왜 (나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했느냐"고 반박하며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인 2007년 10월에는 최고위원이던 이 의원이 "당내에 아직 이명박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는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오만의 극치"라고 받아쳐 결국 최고위원을 사퇴하기에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갈등은 계속 됐다. 현정부가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4대강 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 사업 등에 대한 감사원 감사 등 진상규명에 나서자 이 의원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이 의원은 여당 의원임에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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