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7선의 김 전 의장은 지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13대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당시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1야당인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국회의장은 국정 안정을 위해 집권당이 맡아야 한다’고 양보한 결과 민정당 소속이었던 김 전 의장이 의장 자리에 앉게 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 현 정치권 인사들은 20대 국회 원구성을 앞두고 김 전 의장의 사례를 거듭 언급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를 ‘토사구팽’으로 기억한다. 지난 199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김 전 의장이 한 말 때문이다. 그는 당시 ‘토끼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이 말을 인용하며 본인의 처지를 토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주도한 정치권 물갈이 과정에서 ‘YS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인 본인이 밀려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지금도 정치권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말로 유명하다.
김 전 의장은 유년시절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난 조만식 선생에게 이끌려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났다.
김 전 의장은 정계 은퇴 후인 지난 1970년 월간 교양지 ‘샘터’를 창간했다. 김 전 의장은 생전 ‘샘터’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샘터는 차내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농촌에서도 공장에서도 그리고 일선의 참호 속에서도 읽혀질 것”이라며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다”라고 했다.
현역 의원 시절 국회 상공위원장을 맡으면서 살폈던 경제·산업 현장에서 ‘샘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세계기능인올림픽대회에 나갈 사람들을 뽑기 위해 국내 대회를 열었는데, 인터뷰를 한 사람들 하나같이 자기 일을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하는 사람 들이었다”며 “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나온 게 샘터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02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김 전 의장은 수술 후 하루 5㎞씩 걸으며 운동을 했고, 그 결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언론 인터뷰 중 건강을 묻는 질문에 “내 모습이 아직 연애할 만 한가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 전의장은 지난 2011년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952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김 전 의장은 15·16·17·18대 서울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했고,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됐다. 그는 지난 196년 외무부 정무차관 자리에
다만 김 전 의장은 지난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3000여 평의 땅을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등 부동산 관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강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